놀이문화와 음주에 대한 학교 과제 같은 장문의 글을 쓴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 사이 한달 간, 음주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새로운 놀이문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여지없이 관습에 사로잡혀 과음하고 다음날 앓는 소리를 하며 일어나 힘들어하는 필자 자신을 보면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는 속담이 생각나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지난 번 글을 통해 나는 놀이 문화와 음주 문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정리하고 놀이 문화가 기형적 음주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다양한 놀이문화가 생겨나고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급속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범국민적으로 '놀이'로 대변되는 여가나 기타 활동들은 등한시 하고, '일'에 모든 중심을 맞추었으며, 이 때 쌓이는 스트레스를 '술'로 풀게 된 데에서 놀이 문화의 부재와 음주문화의 기형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사회적 관습에 젖은 젊은이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구조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발생한 기형적 음주문화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므로, 음주를 대체할 수 있는 놀이문화를 발전시켜 음주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사실 놀이문화의 발전은 단순히 불건전한 음주문화에 대한 대안일 뿐만이 아니라 건전하게 발전되었을 때에는 그 자체가 사회에, 또 개인에게도 큰 효용을 수반한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고 오랜 세월에 걸쳐 선조들에 의해 전수되어왔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여백'이라는 것을 중시해왔고,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부호였던 메디치 가문도 일 년에 일정 기간은 지방의 별장에서 보내면서 일에 관계되는 것은 일체 금하면서 여가활동을 즐기기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 외에도 영어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꼭 어렵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놀지 않고 일만, 혹은 공부만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쳐버릴 것이다.
이렇게 직관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정작 '놀이'가 우리에게 어떻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확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놀이'의 중요성, 특히 건전한 놀이문화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그리고 매우 가시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이러한 모든 것들의 전제는 '놀이'가 건전하다는 것이다.
우선, 놀이를 통해 업무 효율성이 증대되고 생산성이 높아진다. 조금 궤변같이 들리겠지만,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예전에 EBS에서 '공부 잘 하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본 적이 있다. 낮에는 뉴욕대학교(NYU)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저녁에는 줄리어드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조승연이라는 분의 강의였는데, 아주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같은 과목을 계속 공부하는 것보다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과목을 바꾸어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뇌가 한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고, 그 임계치에 다른 과목으로 바꾸어주면 효율성이 극대화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한다. 계속 업무나 공부만 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집중도가 떨어져 시간을 죽이게 된다. 일벌레나 공부벌레의 경우도 계속 하던 것만 한다면 능률이 떨어진다. 오히려 시간을 비우고 놀이와 휴식을 병행하는 것이 전반적인 효율성 향상에 도움을 준다.
또 놀이는 기존 업무나 공부에는 사용되지 않는 감각이나 지성 등을 자극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증가시킨다. 흔히들 좌뇌와 우뇌가 있고, 각각 이성과 감성을 담당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업무나 공부는 좌뇌를 자극하는 영역이지만 놀이는 우뇌를 자극한다. 더 정확하게 암기, 분석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순수한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감성이 풍부해지고 상상력과 창의성이 자극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된다. 구글이나 애플과 같이 혁신과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IT 기업들은 사내에 여러가지 '놀이'시설들을 구비해놓고 직원들이 '놀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으로는 아이디어의 시대이고 아이디어의 근원이 '놀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꿰뚫은 것이다. 특히 그 '놀이'의 수준이 높을수록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의 수준 역시 높아진다. 이것이 건전한 놀이문화의 확립이 앞으로 더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놀이'가 중요한 이유는 카타르시스이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현대인은 단순히 육체적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정신적, 감정적 스트레스에도 노출되게 되었고, 육체적 스트레스가 축적되면 단순히 피로감을 느끼거나 건강이 상하게 되는 반면 이러한 스트레스가 제때 해소되지 않으면 정신적 이상이 발생하거나 하는 큰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 스트레스 해소의 창구가 없다면 그 응축된 에너지가 위험한 방향으로 분출될 수 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나, 게임중독으로 인해 생명을 잃거나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 방에 박혀 밖으로 나와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는 오타쿠나 코쿤족들은 정신적/감정적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아 발생하는 기형의 전형적인 예이다. 소수 워커홀릭이나 공부벌레를 제외하고는 일이나 공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건전한 놀이문화를 통해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용들을 통해 '놀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의해 놀이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업무효율성을 증가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간 당 효용, 즉 같은 시간에 삶에 대한 만족도를 증가시킨다 (아주 단순한 예로,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다가 놀면 매우 즐겁고, 또 잠시 놀다가 일로 돌아가야 능률이 오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놀이는 우뇌를 자극해 창의력이나 상상력과 함께 감수성을 발달시키고, 풍부한 감수성은 삶을 풍성하게 한다. 또 놀이는 해로운 정서적/감정적 스트레스를 배출,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한다.
결국 건전한 놀이문화가 확립되어야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또한 놀이는 정서적/감정적 스트레스를 배출시키며 개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증가시키고 이는 사회에 긍정적인 외부효과, 즉 사회적 엔돌핀이 증가해 사회가 건강해진다. 건강한 사회는 개개인에게 건강하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건강한 성장을 가능케 한다.
이 쯤 되면, 놀아야 하지 않겠는가?
Interested: business, finance/economics, society, politics, geopolitics, security, international relations, history
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Society]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놀이문화가 필요하다 ① (놀이문화 부재와 음주의 발달)
어김없이 찾아오는 금요일 밤이다. 거리에는 불빛, 음악소리, 그리고 "프라이데이 나잇"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초저녁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옷가게에 사람들이 붐비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그 발걸음은 어김없이 술집으로 향한다. 거리에 즐비한 술집들은 이름과 간판 빼고는 차이점을 찾을 수 없고, 모두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클럽 역시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술을 마시는 것 이외에는 달리 대안으로 할만한 것들이 없다. 거리에는 술집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말에 한 번쯤은 "왜 할 것이 이렇게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주말, 또는 자유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상관관계나 전후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나는 놀이문화의 빈곤과 젊은이들의 음주 문화의 발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 이 중에도 특별히 대체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는 제한된 시간만이 주어져 있고, ‘놀이’의 선택의 폭은 제한되어 젊은이들의 수요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자연히 대체재인 ‘음주’를 찾는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음주’가 만연해있어 ‘놀이’가 뚫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음주’의 독식 현상은 더욱 강해진다. 이처럼 선후관계는 어찌되었든 ‘음주’와 ‘놀이’의 발전은 우리사회에서만큼은 현상적으로 역의 관계를 갖는다.
우리의 ‘음주’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알코올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음주가 이제는 여성들에게도 관대해지면서 여성 음주인구의 증가에 따라 전체 국민들의 음주량이 늘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실제로, 통계자료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0년 전 맥주, 위스키, 와인의 소비량은 각각 157만 8 천여 kl, 1만여 kl, 6천여 kl 에서 09년도에는 각각 200만 2천여 kl, 2만 5천여 kl, 4만 5천여 kl로 증가했다. 맥주는 약 27%, 위스키는 약 150%, 와인은 약 650% 가량 증가했다. 여성 음주인구를 고려하더라도 증가한 수치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의 놀이문화가 빈곤하게 되었고, 음주문화는 발달하게 된 것일까? 우선 둘의 관계에 있어 나는, 놀이문화의 부재가 음주문화의 발전에 선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먼저 우리나라의 압축적인 경제/사회의 성장이라는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최빈국에서 반세기만에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사회적으로는 해방 후 50년 간, 군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그 후 보수성향의 정당에서 진보성향의 정당으로, 그리고 다시 보수성향의 정당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일본의 경우, 작년 민주당 하토야마 총리가 당선된 것이 민주화 이래 처음으로 정권이 바뀐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모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경제와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하고 고도성장을 누리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인간적인 삶이나 즐거움 등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힘들고 거친 삶을 달래줄 무엇인가는 필요했다. 이런 우리 국민들의 애환을 가장 경제적으로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술이었다. 술은 일시적으로 감정을 부드럽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게다가 값이 싸기까지 하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소주나 막걸리를 싸게 제조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놀이’보다는 ‘음주’에 의존하는 여가시간을 보내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경제가 발전된 이후에도 여전히 놀이문화가 음주를 대체하지 못하는 것에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이는 우리사회 내에 만연한 동조화 풍조 때문이다. 거리에 천편일률적인 식당이나 술집들뿐인 것은, 한 가게가 잘 되면 다른 업주들이 모두 이를 모방해 획일화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와인 붐이 불자 번화가에는 비슷한 컨셉의 와인 바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몇 년 전부터 전세계적인 사케 열풍이 불자 이자카야(일식주점)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의 막걸리 열풍으로 인해, 기존에 소주를 팔던 술집들조차 업종을 막걸리 전문점으로 바꿨다. 술집들이 잘 되기 때문에, 새로운 업종이나 혹은 새로운 술집을 시도하기보다는 선구자를 모방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다.
소비자들, 즉 일반적인 젊은이들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획일화되고 관습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체면과 집단을 중시하는 동양적인 가치관과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이 빚은 결과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해외에서 오랜기간 살다 왔거나 어딘가 남들과 다른 아이는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따돌림 현상은 어디에나 있지만 특히 집단주의가 강하고 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한국과 일본의 경우 정도가 심하다.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놀이문화를 시도해보려는 젊은이들의 도전정신 내지는 창의정신을 막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기존의 관행을 거부하면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대학교 MT나 신입생 환영회, 혹은 회사의 신입사원환영회나 회식자리에서 술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생활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젊은이들은 구시대적인 ‘음주’ 관습에 다시 물들게 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한 놀이문화의 부재로, 우리 젊은이들은 지금 병들어가고 있다. 실제로 간경화, 간암, 알콜중독 등의 질병으로부터,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업무지장 등 음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국회 보건복지 위원회의 김금래 의원은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2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미국의 경우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약 $ 120억 (한화 약 13.5조)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 인구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사회에 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의학연구결과에 따르면 과도한 음주는 2세에 돌연변이나 기형을 출산할 확률을 증가시킨다.
건전한 놀이문화들이 많이 생겨난다고 음주문화를 종식시키거나 완벽하게 대체하진 못할 것이다. 둘 사이가 대체관계에 있긴 해도, 술 만의 독자적인 영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문제가 생겼던 연인이나 친구들 사이에 맨 정신에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진솔한 대화가 필요할 때, 즐거운 일이 있어서 여럿이서 기분 좋게 취하고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등 알코올의 힘이 절실할 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현재 놀이문화의 부족으로 인해 우리 젊은이들의 여가시간 알코올 의존도는 너무 높다. 놀이문화들이 다양해져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면 음주의 대체재가 늘어나고 이는 젊은이들의 알코올 소비량을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Finance] 금융위기는 왜 발생한 것일까? (2009)
2008년은 믿을 수 없는 해였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투자은행 Lehman Brothers의 파산이 기폭제가 되어, 유수의 굴지 투자은행과 금융기관들이 무너지거나, 인수∙합병되거나, 혹은 국유화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는 단순히 금융기관들의 몰락뿐만이 아니라, 다른 산업 군과 경제 전반에도 강한 충격을 가져오고 있다. 미국의 big 3 자동차 업체–Chrysler, GM, Ford-를 비롯해, 대표기업인 GE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호전시켜보기 위해, 새롭게 교체된 오바마 행정부는 7000억 달러에 달하는 전례 없는 구제금융 안을 국회에서 가결시켜 시행하기로 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침체를 막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중앙 정부의 노력은 아직까지는 별 실효성이 없는 듯 하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오늘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각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원인과 해결책,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나름의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금융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견해는 다음과 같다. 2001 년도 IT 버블의 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금리를 낮추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침체를 막았고, 이러한 팽창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낮은 금리로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도록 장려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으므로 주택을 담보로 잡은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그들이 상환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범위의 대출을 허용했다.
한편으로는 낮은 저축률로 인해 예금이 부족한 미국의 은행들은 이러한 주택담보대출(Mortgage Loan)을 증권화했고 국책기관이나 다름없는 지니메이나 프래디맥과 같은 기관들은 이러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유동화한 증권들에 대해 미국 국채와 같은 신용등급을 매겼다. 이처럼 트리플 A로 포장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은 미국의 금융기관들을 비롯해, 고수익과 투자지역의 다각화를 필요로 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금융기관들에게는 매력적인 투자자산이었다. 은행들은 또한 CDS 등의 복잡한 파생상품들을 개발해 유통시켰고. 이제 전 세계의 금융기관들은 이 복잡한 상품들로 인해 하나의 가시덩굴처럼 뒤엉켜버렸다. 한 기관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그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지니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연체율은 높아져갔고, 채무자들의 지속적인 연체와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서브프라임 모기지증권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은 유동성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상품에 정통했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시장과 투자자들의 심리는 급속도로 냉각되고 전 세계의 금융기관과 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진다.
일반적인 경제학자들은 이 정도 선에서 원인 분석을 마친다. 하지만, 이 정도 선에서는 ‘왜 부동산 버블이 꺼지고 왜 대출상환이 연체되거나, 혹은 불이행되는지, 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에까지 번지는지’와 같은 좀 더 근원적인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금융위기의 원인을 좀 더 시장과 인간의 본질 두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시장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이로 인해 구조적으로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주기적인 위기가 나타날 수 밖에 없고, 이 때 중앙정부와 감독제도의 효율성과 건전성에 따라 그 진폭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위기의 발생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근본적으로 현실세계에서의 시장은 완벽하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효율적인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으로, 수 많은 합리적인 공급자들이 수 많은 합리적인 수요자들의 필요에 맞춰 동일한 품질의 재화, 혹은 용역을 생산하고 수요자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한 ‘가격’, 즉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가격에 의해서 소비할 뿐이다. 하지만, 실제의 시장은 모두 ‘완전경쟁시장’이 아니다. 시장에서 공급자 구조를 살펴보면, 독점, 과점, 독점적 경쟁 등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형태의 공급 구조도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질 뿐, ‘완전경쟁시장’이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실제로는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지기보다 과점, 혹은 독점적 경쟁의 형태를 띄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형태의 공급구조는 수요의 정확한 예측을 어렵게 한다. 공급구조의 왜곡으로, 수요자가 누구인지, 얼마만큼을 원하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의 문제가 발생해서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게 된다. 너무 적게 생산한다면 특정 재화의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고, 반대로 수요보다 많이 생산된다면 시장에서 흡수되지 못한 양 만큼의 재화는 과잉생산으로, 공급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과거, 산업혁명 이전에는 자본, 자원의 부족으로 과소생산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때문에 당시의 경제 위기는 기근이나 품귀현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잉여자본과 자원이 늘어나면서, 과잉생산의 문제로 인해 시장에 흡수되지 못한 재화/용역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 것들의 생산자들이 생산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때, 실물경기에서는 과잉 공급이 일어나고 금융시장에서는 버블이 발생한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규모가 커지고, 도산하는 공급자가 많아지고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 경기의 침체가 일어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공황’이라고 부르지만 경기 순환의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침체를 모두 ‘공황’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미국의 2001 년도 당시 IT 버블의 붕괴 상황이 바로 과잉 공급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당시 FRB 의장이던 그린스펀은 침체를 묵인할 경우에 발생하는 정치적인 압력을 피해, 공화당이 하층민 유권자의 표심을 얻어 재선에 성공할 수 있도록 과도하게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하층민의 주택담보대출을 조장했다. 이 역시 주택담보대출에서의 공급과잉으로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번의 문제는 지난 번의 버블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썩은 고름이 터지는 것처럼 더 많은 진통을 유발한다. 이미 IT 버블 붕괴 시에도 이전까지의 경기침체, 버블붕괴의 위험을 인위적인 통화정책과 금융혁신 등 또 다른 버블로 해결한 상태였으므로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세계적인 경제 헤게모니로 채택된 이래 누적된 침체와 버블붕괴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10번의 경기 순환을 경험하였는데, 이 중 침체기는 평균 10개월로 단기화 되어 온 반면, 확장기는 평균 57개월로 장기화되어 왔다). 약간의 조정으로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주기적인 침체에 끝날 수도 있는 당시의 상황을 올바르지 못한 정책으로 억지로 부양시킴으로써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이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주체로서의 개인’을, 여기서 파생된 금융/재무론에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합리적 개인’을 가정한다. 일반적인 경우, 즉 본격적으로 경기 불황, 혹은 호황이 시작되기 전 변동성이 작은 시기,에는 이러한 가정에 의해 합리적으로 개별 경제주체들이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어떠한 모멘텀을 제공할만한 사건으로 인해 그 파급효과가 증폭된다는 사실을 보아왔다. 경기팽창은 항상 도를 지나친 버블을 동반하고, 침체는 불황 또는 심한 경우 공황을 동반한다. 이는 앞서 살펴 본 수급에 의한 측면도 있지만 미시적으로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본성에도 기인한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정치학자였던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을 통해 인간 본성, 즉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인을 공포와 탐욕이라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의 이론을 금융시장에 적용시켜보면 잘 들어맞는다. 누구나 리스크, 즉 돈을 잃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는 회피하고 싶어하고, 높은 수익, 탐욕의 달성을 얻고 싶어한다. 인간은 경기의 팽창기에는 탐욕스러운 본성의 발현으로, 비이성적일 정도로 과도한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수익률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침체기에는, 특히 리먼의 붕괴와 같은 모멘텀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투자의욕과 대출의욕을 상실해 급속한 신뢰상실로 인한 패닉을 가져온다. 이번의 금융위기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로 급격하게 악화된 측면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시장 내에서는 이성보다는 공포와 탐욕과 같은 심리적인 유인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에 따른 위기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국제적인 협약이나 감독기관, 법규제의 완성과 같은 안(案)들이 이상적인 제안이지만 너무나 감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 정부는 계속 독자적으로 달러를 발행해 구제 금융을 지원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공조보다는 자국 산업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금융기관의 경영자들도 본질적인 개선을 하려 하지 않고, 임기응변 식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로비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현황들로 미루어보아, 자크 아탈리와 같은 진보적인 미래학자들이 제시하는 이상적이고 효과적인 안들은 대부분 빛을 발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거나 아예 국제회의석상에서 언급조차 되지 못할 것이고, 침체는 장기화될 것이다.
또한, 일시적으로 케인즈 주의와 정부의 개입과 규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커지겠지만 일단 한 번 단일화된 글로벌 시장이 다시 지역별로 분화되기 힘들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때문에 자본은 당분간은 정부의 통제 하에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수익을 쫓아 이동할 것이고 시장에서는 지속적인 침체와 팽창이 계속될 것이며, 이러한 침체와 팽창을 막을 수는 없다. 특히 금융시장은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러한 순환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리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경제와 금융시스템의 위기해결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시장과 정부가 공조를 통해 경제의 구조적인 순환 사이클에 있어서 그 진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한 방법론 역시 아주 교과서적일 수 밖에 없다. 각각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순환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정부는 시장의 과도한 탐욕과 공포심을 막을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시장과 참여자들을 감시해야 하며, 시장과 참여자들은 자원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도록 하되 시장에서 비이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시장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러한 시장이 최대한 제 기능을 제대로 해서 정보 비대칭의 폐해를 줄이고, 금융시장 내의 인간의 본성에 의해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막아서 경제가 침체기에 연착륙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Politics] 등소평의 리더십
얼마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차기 지도자로 시진핑이 사실상 내정되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자, 동북아의 맹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차기 지배구조의 개편에 대해, 우리 뿐만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1당 지배 체제로, 당 차원에서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평화롭게 정권을 승계할 수 있게끔 한다. 2012년부터 중국을 이끌게 될 시진핑은 현 국가 주석인 후진타오로부터, 후진타오는 장쩌민으로부터, 그리고 장쩌민은 등소평으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았다.
등소평, 중국어로는 덩샤오핑이라고 불리는 그는 근대 중국사에서 모택동(마오쩌둥)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모택동이 어지러운 중국을 하나로 통일시켜 신중국을 건설했다면 등소평은 문화대혁명과 홍위병의 무리로 얼룩진 신중국을 개혁하고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이끌었다. 역할만 놓고 본다면, 모택동은 전국시대의 혼란스러운 일본을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나 조선 시대의 태종 이방원과, 등소평은 통일국가로서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세종과의 관계와도 비슷하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등소평이 이처럼 중국 경제발전의 아버지로 불리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의 긴 정치 인생에 걸쳐 총 3번이나 실각을 당했으며, 가장 마지막으로 실각을 당했을 때에는 그의 나이가 60을 훌쩍 넘긴 시기였다. 또한, 이 때 사랑하는 아들이 불구가 되었다. 이처럼 많은 난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등소평이 중국 근대사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고, 나는 이 요소들을 크게 내부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내부적인 요인으로는 ‘긍정의 힘’을 들 수 있다. 등소평은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특유의 불굴의 의지와 투지로 난관들을 헤쳐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단순히 오기나 악으로만 버텼다면 그는 3번의 실각과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긴 유배생활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등소평의 혁명 동지였던 천이는 정적으로부터의 공격에 분개해 끊임없이 분노하고 번민하다 결국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설령, 그런 시련을 버텨내고 다시 정권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를 축출해낸 모택통과 문화 혁명세력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조국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보지 못하고 정치적 보복에만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등소평이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몰아냈던 모택동의 업적을 기리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정진했다. 등소평이 이처럼 작은 원한이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어진 시련을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견뎌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등소평의 주변의 ‘사람들’, 즉 네트워크를 들 수 있다. 리더 혼자서만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이끈다고 조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등소평이 마지막 실각으로부터 다시 정권을 잡을 때에, 그의 오랜 혁명 동지였던 저우언라이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등소평에게는 그의 비전을 사후에도 실행으로 옮겨줄 후배 동지들도 항상 함께했다. 오늘날 중국을 이끌고 있는 장쩌민,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도 모두 등소평이 끌어주던, 말하자면 ‘문하생’인 셈이다. 등소평은 이처럼 ‘사람들’의 도움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아랫사람들을 최고의 자리로 끌어주기도 했다. 물론, 등소평의 주변에 걸출한 인재들이 많았던 것에는 어느 정도의 운이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주변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은 일면에서는 좋은 인복을 타고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등소평은 ‘인복’과 ‘관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성공적인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나는 등소평의 리더십의 원천과 성공의 요소를 긍정의 힘과 주변의 사람들로 본다. 물론 이 밖에도 등소평의 명석함과 논리력, 비전의 제시, 희생정신 등도 그를 최고의 반열에 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다른 능력들보다는 ‘긍정의 힘’과 ‘사람들’이 가장 핵심적인 성공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둔재를 이기지 못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를 빠뜨렸다. “천재든 노력하는 둔재든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인사가 만사다.” 결국 등소평을 금세기 동양 최고의 리더로 이끌었던 것도, 이러한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련과 리더로서의 역할을 즐기는, ‘긍정의 힘’과 주변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안녕하세요! (Greetings)
IT 문외한인 제가 트위터, 페이스북을 넘어 드디어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가끔씩 들어와 관심분야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작했으니 죽이되든 밥이되든 해보렵니다.
종종 들어오셔서 생각 나누고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코멘트 해주시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이메일 주소로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ve just started blogging. I would write short articles on various subjects that I'm interested in including economics, buseinss, energy, foods and etc.
I'm not sure until when I can write on this blog since I'm a bit lazy person, but I'll try as much as I can.
Hope that you can express your thoughts and share opinion on this blog. If you are interested in exchanging idea and discussing with me, please feel free to e-mail me. E-mail address is written below.
Thank you.
-
박 재한 (Park, Jae Han)
Email: jhanpark@yonsei.ac.kr
가끔씩 들어와 관심분야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작했으니 죽이되든 밥이되든 해보렵니다.
종종 들어오셔서 생각 나누고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코멘트 해주시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이메일 주소로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ve just started blogging. I would write short articles on various subjects that I'm interested in including economics, buseinss, energy, foods and etc.
I'm not sure until when I can write on this blog since I'm a bit lazy person, but I'll try as much as I can.
Hope that you can express your thoughts and share opinion on this blog. If you are interested in exchanging idea and discussing with me, please feel free to e-mail me. E-mail address is written below.
Thank you.
-
박 재한 (Park, Jae Han)
Email: jhanpark@yonsei.ac.kr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