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4일 화요일

[Economics / Society] 통계의 지배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많은 경영학과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종은 금융권 진출, 특히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와 같은 외국계 투자은행 취업이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로 투자은행이나 월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외국계 투자은행가들의 전형적 모습은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가장 잘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잘 다려진 양복에 실크 타이를 두르고 낮에는 바쁘게 일하고 화려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는 뱅커들의 모습은 나를 비롯하여 많은 젊은 경영학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으리라.

하지만 최근까지 정작 골드만 삭스나 모건 스탠리와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수익을 많이 올리는 분야는 M&A나 주식/채권 발행 등의 전통적인 투자은행업이 아닌 자기자본 거래(prop trading) 였다. 소위 프랍 트레이딩이라고 불리는 한동안 핫했던 분야는, 투자은행/증권사들이 남의 돈으로 유가증권을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본금으로 여러가지 자산을 매매하면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돈을 버는 곳이다. 이 프랍 트레이딩을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하여 단기자금을 끌어와 자본금의 몇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일으키면 아주 낮은 퍼센티지의 수익만 올리게 되더라도 그 절대 액수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난다. 2008년 3월 말 리먼브러더스가 보고했던 자기자본 대비 총 부채비율은 15.4 였다. (물론 이 정도도 상당한 양의 부채가 여러가지 복잡한 회계기법을 통해서 감추어진 수치이다) 이 프랍 트레이딩 기법의 선구자가 골드만 삭스였다. 이에 대해 혹자는 골드만 삭스는 헤지펀드가 되려하고, 다른 투자은행들은 골드만 삭스가 되려하고, 은행들이 투자은행이 되려고 하는 기현상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부실해지고, 서브 프라임 파국 사태를 맞았다고 냉소한다.

여러가지 복잡한 거래기법과 투자구조들이 발전되는데다,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파생상품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학부 졸업생들이 전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개념이다. 특히 CDO나 CDS 등 담보자산의 위험을 쪼개어 다시 풀링해서 만드는 구조화 금융상품은 고도의 수학적 기법과 통계적 지식이 필요하다. 때문에 수년 전부터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던 직종이 바로 이런 상품들을 설계하고 위험과 수익을 계산해내는 퀀트들이고, 이런 퀀트들은 대부분 수학 및 통계 관련학과 졸업자들이다. 나이가 들면 노쇠하는 동물적 감각에 의존하는 트레이더들과는 달리, 이 퀀트들은 굵고 길게 간다는 장점이 있어서 금융공학 대학원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경영대학원은 앞다투어 금융MBA 과정을 열었다.
비단 금융이나 재무론에서만 수학과 통계가 중요해졌을까? 시기적으로 조금 앞서 있기는 하나, 금융/재무론의 원류인 경제학 역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의 옷을 벗고 숫자와 통계 데이터로 무장한 계량경제학(Econometrics)이라는 새 옷을 입고 기존의 통설들을 뒤집으며 부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적으로 경제학에 수식을 도입한 것의 원류로 보는 것은 알프레드 마셜과 그의 제자들인 마지널리스트들이나,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는 인물은 폴 사뮤엘슨이며, 계량경제학의 기초가 완성된 것으로 보는 시점은 1950년이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미국의 헤게모니 아래에 평화(이견이 많겠지만 이 역시도 '통계적'으로 입증된 수치이다)가 지속되어, 외교나 정치보다는 경제가 훨씬 중요해졌다. IT 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경제는 더 빠르게 통합되어 갔으며, 1971년 금태환 중지 이래로 더욱 더 정교하게 발전해온 외환 및 파생상품 시장 역시 세계화되며 복잡성을 더해갔다. 그 어느때보다 복잡하고 국제화된 세계경제. 이 세계경제의 현황을 진단하고 앞날을 모색함에 있어서, 코끼리의 어느 한 신체부위만을 만지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들의 중요성은 그 어느때보다도 커졌다.

재무론과 경제학 뿐만이 아니다. 작년도 미국 대선을 분석한 미국 주요언론이나 싱크탱크들의 글을 보면, 생소한 이름의 정치평론가들이 나와서 지금 막 생각해낸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한국 미디어들의 정치프로와는 달리, 실증적인 데이터들에서 염출한 객관적인 수치들을 이용해, 상당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또 객관적인 분석을 제공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또, 각 대선 캠프들도 통계전공자들을 다수 기용해, 어떤 정책이나 어떤 이미지들이 후보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선거에 이용한다는 내용의 칼럼 역시 인상적이었다.

지성의 대결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증거'이다. 그 중에서도 통계적인 유의미성을 갖는 데이터는 단연 으뜸이다. 극단적일 수 있는 역사적인 선례 한 두가지를 드는 것보다, 축적된 통계수치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입증되지 않은 완벽한 논리보다는 실증된 통계수치들이 훨씬 더 믿을만 하다. 단순하게 생각을 해보자. 난 야구는 잘 모르지만, 야구경기를 볼 때에, 정말 무식하게 야구를 모르는 사람으로써, 각 야구팀의 전력을 비교할 때에 쓸 수 있는 가장 1 차적이고도 객관적인 방법은 우선 코치의 전적들을 분석하고 각 타자들의 타율을 비교하는 것아닐까?
(실제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머니 볼'을 보면, 아이비리그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야구광이 통계를 이용하여 지지부진하던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이 나온다. 물론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아이비리거는 아니고, 그의 핵심 참모가 그 역할을 한다) 

사실 숫자와 데이터만큼 공정하고 가치중립적인 것들은 없다. 나도 한동안은 이러한 계량/통계적 방법론에 다소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사실 잘 생각을 해보면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의 실수이거나, 혹은 해당수치의 중요도 및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의 능력부재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중국정부처럼(굳이 지목하자니 그렇지만) 미가공 데이터(raw data)의 기록 단계에서부터 정확하지 않은데다 최종 데이터 염출에 있어서 (정치적인 의도로 인해) 조작된 경우일 것이다. 때문에 통계기관의 독립성 및 건전성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객관적 통계가 없던 과거에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무조건 옳은 것이고 믿고 따라야 했다. 어른들은 소위 경험을 통한 '통찰'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로 인해 그들의 권위과 권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기후변화에 민감한 농경사회였던 동양에서 더욱 심했다. 어르신들이 "어이쿠 무릎이 쑤시는 걸 보니 비가 오려나보다." 하시면 타당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유목/수렵민들은 이러한 경험보다는 육체적 민첩성과 힘이 더 중요했고, 상업이나 공업이 발전한 사회에서는 독창성과 손재주가 더 중요한데 반해, 농경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개인의 오랜 삶을 통해 얻은 주관적 통찰을 갖고 있는 노인들의 말씀이 절대적이었다.
(기후가 농경에 갖는 중요성은 거의 절대적이다. 아직도 최대 농업기업인 카길의 분석관들이 주로 하는 일은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기후 및 지리를 분석하는 일이라고 한다. 사실 고대사회의 지배계급이었던 사제들은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들을 통해서 기후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들을 독점함으로써, 그 지위를 세습하고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주관적 경험에 의존한 '통찰'보다 통계가 어쩌면 훨씬 더 객관적이고, 심지어는 또 민주적이기까지 하다. 데이터만 있다면 젊은이와 노인이 동등한 입장에서 논쟁을 벌이고, 권위에 의한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객관적인 수치들을 바탕으로 생산적인 논쟁을 끌어갈 수 있으며, 이 데이터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젊은이가 노인을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환생을 해 우리 사회의 성 문란을 개탄하며 "남녀칠세 부동석!" 이라고 한다고 치자. 유교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나는 전세계 여러 국가들의 데이터를 긁어모으기 시작할 것이다. 남녀가 어린 시절부터 조화롭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하는 경우의 폐단에 관한 전세계의 통계 데이터를 모아와서 TV 토론회에서 공자가 보는 앞에서 깔끔한 도표와 수식으로 제시한다.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쉽게 말하면, 나 같은 일개 학부 졸업생도 얼마나 좋은 데이터를 많이 수집하고 잘 분석하느냐에 따라서, 공자같은 '성현'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만들어낸 도그마를 깨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라인하트-로고프의 논문의 데이터 오류를 처음 지적한 것도, 노벨상이나 클라크 메달을 수상한 대 경제학자가 아닌, 박사과정 학생이라는 것을 보면, 통계가 얼마나 상아탑을 더 민주적이고 객관적인 곳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만약 여전히 개인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반영하는 주관적 '통찰' 위에 지어진 논리로 모든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풍조가 학계에 만연했다면, 일개 박사과정 학생이 로고프나 라인하트 같은 대학자들의 논문에 감히 딴지를 걸 수 있었을까? 물론 걸 수는 있었겠지만, 연륜을 갖춘 대학자들에게 논쟁에서 지거나, 혹은 학계의 기득권들에게 묵살을 당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데이터에 근거해 결과를 염출하는 학문적 풍토에서는, 그 결과에 반하는 명백한 근거(데이터)를 제시한다면 언제든지 결과가 번복되거나, 생산적인 논쟁의 여지가 될 수 있다.

옳지못한 결과의 번복과 생산적 논쟁에 대한 가능성은 창의적이고 열려있는 학술적 풍토와 이내는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지배계층이나 기득권의 철학이나 논리가 아닌, 객관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진리를, 혹은 더 나은 결과를 추구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바로 수치에 근거한 통계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어쩌면,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만큼은, 객관적인 통계수치가 당분간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2013년 4월 28일 일요일

[Finance / Economics] 새로운 환율전쟁의 서막?


20세기 초, 전세계를 강타했던 환율전쟁의 어두운 기운이 다시 세계경제를 감싸고 있다. 제외한 주요국의 중앙은행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경쟁적으로 돈을 찍어내고 있다. 아베노믹스, QE,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스왑 등등 어떤 방법으로 불리든, 이 모든 통화정책의 골자는 종이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의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현재의 경제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단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이 현재의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당과 야당 모두, 혹은 기업들이나 일반 국민들 역시도 누구 하나 희생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기에 오늘날의 경제문제 해결이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현 시점에서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는 중앙은행장의 결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돈을 찍어낼 수 있는 통화정책 뿐이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그 자체만으로 현재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지난 몇년간의 정책수행의 결과에서 잘 드러났다시피, 중앙은행 당국이 의도했던 바와는 관계없이, 돈이 실물경제 혹은 가계로 제대로 흘러 들어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다국적 기업과 금융기관의 현금 보유량이 치솟고, 원자재의 가격이 폭등하고, 실제경기지표와는 관계없이 일부 국가의 주식시장만이 과열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리스크 관리를 위해 현금을 보유하고, 펀드 매니저는 원자재나 일부 주식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선택일 수 있으나, 경기를 진작시키고자 하는 중앙은행가들의 의도했던대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더 큰 문제는, 더 많은 돈을 찍어내면 찍어낼수록, 일반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은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통화주의 경제학의 아버지인 밀턴 프리드먼이 말했던 것처럼 인플레이션은 순전히 통화와 관련된 문제이다. 과도한 유동성으로 인해 물가는 상승하지만, 사람들의 명목임금은 이에 맞추어 상승하지 않는다. 반면, 실물자산이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부유층들은 자산가격 상승의 효과를 볼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지고, "경제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물론 종이화폐를 찍어내는 통화정책의 이점도 있다. 가장 많이 기대되는 효과들 중 하나는 '부의 이전'(transfer of wealth) 효과이다. 화폐의 상대적인 가치가 줄어들면, 그만큼 채무자와 채권자 간 부의 이전이 발생한다. 한 국가경제 내 개인 채무자들의 부채만이 탕감되는 것이 아니라, 환율이 절하되므로 빚에 허덕이고 있는 선진국 경제들의 채무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비를 진작시켜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

또 다른 기대효과로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 이다. 이는 통화당국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할 목적으로 금리를 인하한다면, 자산가격이 상승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소비를 진작시키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로 부동산 경기 같은 경우는 주택이 개인의 재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를 판단하고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에 매우 중요한 지표임에는 틀림없다. 또, 미국 같은 경우는 주식시장은 연기금의 많은 부분이 미국 내 주식시장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주가의 변동에 따라 민간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거나, 호전될 수 있다.

세번째로, 통화공급이 증가하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해당 통화의 상대적 가치가 절하되고, 이로 인해 가치가 낮아진 자국 통화는 더욱 경쟁적이어진다. 이러한 경쟁적인 통화는, 적어도 이론 상으로는, 자국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므로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게되며, 동시에 수입품의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에 외국 기업들의 국내진입을 막는 효과를 갖는다. 경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통화를 절하시켜 순수출을 늘리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GDP는 가계소비, 기업투자, 정부지출, 그리고 순수출로 구성되는데, 가계가 소비를 하지 않고,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정부가 더 이상지출을 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순수출을 늘리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황금률과 공존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자국의 국익이 우선인 냉혹한 현실에서는,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는 군비증강과 다를 것이 없다. 타국의 통화가치가 절하되어 자국의 순수출이 줄어들게 된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를 평가절하시키려 할 것이다.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이 최대교역국인 중국을 대상으로 환율전쟁의 칼을 뽑아들었고, 하나 둘 씩 참가해 어느새 일본도 아베노믹스를 들고 환율전쟁에 참가했다. 우리나라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엔화가치 절하에 대응하여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브라질 재무장관 Guido Mantega가 말했듯이 새로운 환율전쟁의 서막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LTCM 파산 당시 주요 협상자들 중 하나였고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Currency Wars: The making of the next global crisis"의 저자인 James Rickards에 의하면 20세기 초의 환율전쟁은 1921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쟁배상금을 상환하고 자국상품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통화를 절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마르크 화 붕괴를 염두에 두고 한 행위는 아니었겠지만, 이는 결국 주변국들의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마르크화를 붕괴시키고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러한 통화가치의 폭락으로 인한 경제난이 나치의 집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다시 오늘날의 세계, 특히 우리가 위치한 동아시아로 돌아와 보자. 미국과 중국이 이미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주요 수출국인 일본이 가세했다. 엔화 가치가 낮아져 일본상품이 경쟁력이 생긴다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이 누구일까? 수출에 의존한 경제모델이면서, 그 제품에는 큰 특색이 없는 한국, 대만, 중국이 그들일 것이다. 국내 실업률이 치솟고 경기지표가 악화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손해볼 국가는 없다. 한국, 중국, 대만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가치를 절하시키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이는 다시 미국과 일본의 통화 당국자들에게 고민을 가져온다. 이러한 경쟁적 평가절하가 어느선에서 수렴될 지, 혹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튀어 20세기 초와 같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역사는 대체로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 방향이 긍정적이길 바랄 뿐이다.

2013년 4월 21일 일요일

[Finance / Economics] 불안한 중국의 그림자 금융


나는 항상 중국의 부상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 시절 중국사 시간에 중국의 정치 지배구조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공산당이 잠재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중국에 대한 통제권을 잃거나 중국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결론이야 어쨌건 보고서로서는 빵점짜리 졸작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중국은 떠오르는 신흥패권국이다 -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연간 경제성장률은 8%에 육박하며, 13 6천만의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고, 핵잠수함과 항공모함, 그리고 괄목할만한 군사력을 지닌 강국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은 오늘날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으며, 달러화 표시자산을 3조 달러나 보유하여 패권국 미국의 최대 채권국가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이 지속될 경우에 2030년경에는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하고 이에 상응하는 군사력을 갖게 된다면 미국을 대체하는 슈퍼파워가 탄생할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중국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많은 약점들을 고려해본다면, 이러한 성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가 어려우며,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는 날은 생각보다 가깝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달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흥미로운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 동영상은 STRATFOR 라는 국제정세 분석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중국 경제의 잠재적 위협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 동영상의 주된 내용은 "그림자 금융"에 관한 것이었다. "그림자 금융" 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채권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계 자산운용사 PIMCO 에서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지 않는 부외거래를 통해 이루어지는 금융거래를 정의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은행권 자금이 이 그림자 금융 시스템을 통해서, 소규모 소비자 금융회사에 의한 대출, 중소기업 상업어음 할인, 전당포, 고리대금업 등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림자 금융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서방에서는 헤지펀드나 파생상품 거래 등에 사용되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신용망에 접근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나 소득수준이 낮은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거래를 위해 사용된 것이다.


STRATFOR는 중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를 보수적으로 책정한 경우에 12조 위안에서 많게는 30조 위안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1.9조에서 4.8조 달러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중국의 현재 인구가 13 6천 만명 정도라면, 1인당 적어도 1,400 에서 3,500 달러 정도의 그림자금융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그림자 금융 시스템에서 이루어진 대출들은 상당히 금리가 높다는 것인데, STRATFOR는 그림자 금융 대출금리를 20~3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수치조차도 상당히 과소평가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중국보다 금융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우리나라조차도 대부업법 법정 이자율은 현재 39%이지만, 연간 100% 가 넘는 이자를 받으며 폭리를 취하는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업자들에 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STRATFOR의 보수적인 이자율을 바탕으로 계산을 해보더라도, 평균 중국인 1인당 연간 280 달러에서 1260달러 사이의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중국인 1인당 GDP 6000 달러가 좀 넘으니, 자신의 연간소득 중 적게는 4.6%에서 많게는 21% 정도가 그림자 금융 시스템을 통해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갚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더 최근에는, 글로벌 투자은행 UBS가 중국의 그림자 금융시스템의 규모가 GDP 40%를 넘는 3.2조 달러 정도가 될 것이라는 추산을 내놓았다. 모건 스탠리 글로벌 투자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Ruchir Sharma에 의하면, 중국인 1인당 부채비율은 연간 GDP 200% 정도이다. 이는 국가 및 지방정부 채무만을 합산한 것인데, 그림자 금융을 통해 차입한 것들을 추산한다면 추가적으로 GDP 40~50% 정도의 숨겨진 부채가 더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가 빚더미에 앉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양호해 보일 수도 있다. Ruchir Sharma는 미국의 연방 및 주정부 부채들을 합산해보면 미국인 1인당 평균적으로 연간소득의 350% 에 해당하는 부채를 지고 있다고 추산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개인의 채무는 주택, 자동차, 학자금 대출, 보험 등등 유무형의 자산들을 취득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또 연방예산의 대부분은 국방이나 사회보장기금 등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사용된다. 반면에 그림자 금융시스템에서 돈을 빌리는 중소기업이나 중국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때문에 현재의 부채수준에서 그림자 금융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은 상당하다. 중국과 미국의 또 다른 차이점은,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국가이나, 중국은 개발도상국들 중 가장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야 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1인당 GDP가 미국의 7분의 1 수준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이자비용이 개인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커진다. (일부 중국 신용평가사가 무디스나 피치 등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미국의 실제 신용도는 더 낮고 중국의 신용도는 더 높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공허하고 의미없는 것일 뿐이다. 금융시장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 누구이며,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많은 판돈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미국의 부채는 FRB의 통화정책에 의해서 언제든지 탕감될 수 있다. 중국이 3조 달러 어치의 달러표시자산을 갖고 있는데, 만약 연준에서 달러를 현재가치의 75% 수준으로 평가절하하려고 한다면, 실제로 중국의 달러표시 자산 중 25%의 가치가 증발하는 것과 동일하다. (중국은 채권과 통화를 거의 반반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미국 국채를 투매할 수 없다. 통화를 매도하든 채권을 매도하든 나머지 보유자산의 가치는 폭락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글로벌 화폐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EU 뿐만 아니라 BRIC 국가들조차도 자국통화를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절하시키고 있고, 이는 중국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기업이나 국영기업들은 견딜 수 있겠지만, 중소업체들이나 영세 개인사업자들은 이러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도산하게 될 것이고, 이는 대규모 실업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 일본 역시 환율전쟁에 가담했는데, 이는 경쟁력 없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국은 2008년 금융 위기에는, 국영 혹은 거의 국영이나 다름없는 여러 은행들을 통해 신용을 확대시키고 정부지출을 늘려서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의 팽창으로 인해서 중국 국내 통화량이 자국 GDP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까지 확대되었다. Ruchir Sharma에 따르면, 현재 중국 내 통화량은 10조 달러 정도로, 7조 달러 정도의 GDP보다도 더 큰 수치이며, 이는 심지어 미국 내 통화량(8)보다도 더 크다고 한다.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을 때 중국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13억분의 1의 확률을 뚫고 그 자리에 올라선 중국 공산당 위정자들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지 궁금해진다.  

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Politics / Economics] 재정절벽에 관한 짧은 생각

얼마 전 중동 출장 중, 숙소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TV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고 있었다. 아랍어 방송들 위주로 나와 화면만 3초씩 보고 지나가던 중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방송이었던 블룸버그 TV에서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블랙록의 CEO 래리핑크. 블룸버그 TV에서 재정절벽과 관련하여 핑크 CEO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던 차였다. 핑크 CEO는 공화당 및 민주당 의원들 몇몇을 만나고 왔으며, 미 의회가 경제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일련의 딜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보다보니 문득, "재정절벽"의 위험이 미디어에서 다소 과대평가 되어 보도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연간 GDP 의 3배, 약 $3.6조를 움직이는 금융계의 거물, 래리 핑크 블랙 록 CEO)


'재정절벽'이란 수년간 지속되어 오던 세금감면혜택과 재정지출 프로그램이 동시에 만료되어 경제에 충격을 주는 것을 뜻한다. 자국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방법론에서 민주당은 정부지출 확대를, 공화당은 세금감면을 주장해왔다. 대통령과 상원 다수당은 민주당이지만, 하원 다수당은 공화당이기 때문에 이 둘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견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12년이면 만료되는 세금감면혜택의 연장과 재정지출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재정적자'의 위험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재정절벽이 현실화될 경우에는 내년 미국 경제는 0.5% 위축되며 현재 7.9% 가량인 실업률도 9%대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서로대립하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징인 코끼리와 말. 심볼이 의외로 귀엽다)


개인적으로는, 양당이 세금감면혜택이나 재정지출 둘 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모두를 연장하는 데에 합의할 것이지만 이러한 '빅 딜'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사되지 않다가 가장 극적인 순간에 성사되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생각한다. 연출에 능한 미국 미디어는 다음과 같은 보도를 계속해서 내보낼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분열되어 있어 보이지만, 우리는 이 나라가 그대로 주저앉도록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직면하게 되는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전형적인 미국의 전략들 중 하나이다. 미국은 국론을 하나로 수렴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반에는 간과하던 잠재적 위험들을 특정 단계가 지나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외부적인 요소들이 활용된다. '60 ~ 70 년대의 소비에트 연방, '80년대 일본 및 일본기업들, 2000년대 초반에는 알카에다의 아랍 내 세력권 확장, 그리고 최근 부상하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외부요소들을 국가의 '심대한 위협'으로 설정되는데 사용되었다. 때로는 그렇게 많은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내부적인 문제들이 부각되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해결된 '90년대 초의 쌍둥이 적자, 그리고 새로운 혁신의 부재 등이 좋은 예 이다. (사실은 가장 많은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최근 몇년 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중국인 또는 중국 기반의 악당들이 많이 나왔다.
영화 "다크나이트" 중)

'가상의 적'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요소들은 물론 미국의 국가안보, 경제 및 사회안전성 등에 잠재적인 위협을 끼치기는 했으나 심대한 위협을 끼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처럼 외부의 '가상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국민들을 통합하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안들을 도출해내고, 결론적으로는 새로운 발전을 위한 동력을 제공하는 모멘텀이 되어왔다. '재정절벽'에 관련한 논란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설정된 '가상의 적' 아닐까?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IR/Geoplolitics] 소국의 선택, 협력과 공존

오늘날 국제정세와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구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한 이후로 20년간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은, 2008년도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로 인해 그 위신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장기간의 경제성장과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경제 뿐만이 아니라 군사, 외교, 정치 분야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미국은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아가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국방 및 안보정책에서 "Pivot to Asia"를 외치며 동아시아 지역 내 군사 및 경제 동맹 TPP (환태평양 동반자협정)를 구축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질세라 RCEP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구축해서 역내에서 영향권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안보는 철저하게 미국에, 경제는 철저하게 중국에 의존하는 작은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은 둘 중 어느 하나에게도 소홀할 수 없는 한 편, 둘 중 어느 하나의 변심에도 국가적 위기를 맞을 수 있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발군의 외교실력을 발휘하는 것 만으로는 무리다. 미국이건 중국이건 경쟁이 심화되는 어느 시점에선가는 역내 국가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고 소국인 대한민국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두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봉착한 소국들은 항상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명-청 사이에 갈등하던 조선 외에도, 르네상스 말엽에서 대항해 시대로 넘어가는 16 세기 지중해의 베네치아가 오늘날 우리와 비슷한 경우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기독교 연합 세력은 당시 전세계 무역의 중심이던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겨루었다. 당시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었는데, 주요 교역 대상국은 오스만 투르크였다. 반면, 교황청과 같은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문화적/정서적으로는 기독교 국가였던 터라 명분 상으로는 기독교 세력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도 비슷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이 가열된다면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고, 베네치아보다 운신의 폭이 더 좁은 우리나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자주국방능력을 확보하고, 내수의 확대를 통해서 대외의존도를 감소시킨다는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난 반세기 간의 국가전략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점진적인 개정이 필요로 할 것이다. 수출중심의 경제구조가 내수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의 소득이 증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경제정책이 전면적으로 수정된 뒤로도 긴 시간이 걸린다. 동시에 인구가 증가해야 하는데,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적고 노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에서 단기간 내에 내수를 증대시키기 위해 획기적으로 인구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낙타를 바늘 구멍에 넣는 것 보다도 어려워 보인다. 국방의 경우는 더 어려워 보인다. 북한과 이미 대치해 있는 상황이고, 단순히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군비증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이들만큼 커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힘 만으로 이들 사이에서 영토주권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이상적인 이야기들은 시간적인 측면, 즉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임박했다는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아가야 할까? 자연에서 작은 고기들은 떼를 지어 큰 무리를 형성해 다니면서 상어 등의 포식자들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한다. 국제사회라는 대양에서 작은 고기와 같은 우리 대한민국도 큰 고기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취할 수 있다. 국가들이 연합을 위해서 공조하는 것은 물고기들이 살기 위해서 군집해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겠지만, 그 근본원리는 같다. 어느 한 거대한 개체에 자신을 의존하는 것보다는 작은 개체들간의 협력을 통해서 큰 개체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ASEAN, 대만과의 협력강화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ASEAN 국가들 및 대만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거나해상에서 이미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등, 중국의 세력 팽창으로 인해 잠재적으로 국가 안보 상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국가들이다. 특히 대만과 같은 경우는 직접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주권을 위협받고 있다. 이들 하나하나는 작은 국가들이기 때문에 현재는 미국과의 군사협력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지만, 이들도 언제까지나 미국의 지원만을 바라볼 수 만은 없는 입장이다. 미국 역시도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 보다는 이 지역에 연합세력을 형성한다면 중국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때문에, ASEAN 역내 뿐만 아니라 대만과 한국까지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상호신뢰를 쌓아 상호 간 유사시 군사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선 까지 발전된다면, 중국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미국 역시 완충지대(Buffer-zone)로서 ASEAN-대만-한국의 협력을 인정하려 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ASEAN 의 현재 경제규모는 2011년도 기준 2.18조 달러로, 대만과 한국을 합친다면 그 경제규모는 3.76조 달러에 이른다. 이는 2011년 3.6 조 달러의 독일에 이어 세계 5위 규모로, 2017년에는 ASEAN 및 대한민국, 대만의 경제규모의 합은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규모인 6.1조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명목 GDP 기준,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이 정도 규모의 경제권이 하나로 엮인다면, 더구나 ASEAN 인구가 6 억에 달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젊은이 층이기 때문에 경제가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 또한 ASEAN 국가들이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ASEAN 국가들과의 교류는 현재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대외의존도 심화 및 역동성의 상실, 그리고 자원부족이라는 문제점들에 대한 좋은 활력소이자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SEAN 국가들은 반대로 기술력 및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의 투자 및 기술협력 등에 목말라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본다면, ASEAN 과의 경제적인 협력은 양측 모두에게 득을 주는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ASEAN 이외, 대만의 경우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IT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대만과 한국 기업들이 협력을 통해서 IT 기술 R&D에 투자한다면, 치고 올라오는 중국, 원천기술을 독점하는 일본과의 경쟁에 훌륭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군사-경제 협력이 증진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리더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ASEAN 국가들이나 대만보다 군사/경제적인 측면에서 앞서있다. ASEAN의 맹주인 인도네시아 역시 2011년도 현재 GDP는 약 8950억 달러로 1.15조 달러에 달하는 대한민국에 비해 근소하게 뒤져있다. 군사적으로도 우리 방위산업체들이 무기체계 및 장비들을 다량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한류' 및 'K-Pop'이 이들 동남아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며 'Made in Korea'에 대한 인지도가 한껏 고조되어 있다. 또, 이들 국가들이 대부분 한국의 경제개발전략들을 연구하고 벤치마크로 삼고 있다는 점들 역시 주목할만하다. 이처럼 ASEAN 국가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지역 내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자주적으로 지키자"는 하나의 이니셔티브를 갖고 주도적으로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ASEAN 국가 지도자들 및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반향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 "적벽대전"에 보면 새끼줄을 꼬아 짚신을 만들던 유비가 지푸라기 몇 개를 부하들에게 건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푸라기가 하나씩 있으면 쉽게 끊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약한 지푸라기도 여럿이 모여있으면 이렇게 끊어지질 않는다." 우리의 상황도 비슷해 보인다. 국제사회는 엄연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어느 쪽에 붙을지를 고민하면서 국가의 존망을 지도자들의 외교력과 정치력으로만 해결하기 보다, 힘 없는 세력들을 규합해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한다면, 게임의 룰을 바꿀 수가 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 인종, 다른 경제상황, 상호신뢰의 부재 등 많은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 중국이나 미국, 혹은 다른 제 3 자가 이처럼 하나의 연합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대국 사이에 홀로 고립된 국가는 항상 슬픈 운명을 맞아왔으며 군사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력 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국들 간의 공조와 협력을 통해 '강대국'은 아니더라도 '강소국 연대'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John F. Kennedy 대통령의 취임 연설 중 일부를 적어보고자 한다.
"United, there is little we cannot do in a host of cooperative ventures. Divided, there is little we can do - for we dare not meet a powerful challenge at odds and split asunder."

5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말이 더욱더 절실하게 와닿는 요즘이다.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IR / Economics] 세종대왕과 모택동이 그리는 대한민국 지도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지폐는 한국은행권 만원권일 것이다. 이 만원권의 앞면에는 우리 국민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선군,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그려져있다. 모든 화폐가 그렇듯 만원권은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의해 가치가 보증된 수표이며 이것의 가치에 대한 신뢰는 대한민국 경제력과 국력에 대한 신뢰이다.

중국의 화폐는 인민폐이다. 인민폐 1, 5, 10, 50, 100 위안권에는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서방세계의 '환율조작국' 의혹에도 불구하고 연일 그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위안화는 오랜기간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을 제치고 G2 로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경제의 위상을 잘 나타낸다. 실제로 지난 18일,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중국이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한 93년도 이래 거의 2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정부는 위안화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에도 적극적이다. 주변 교역국들과 통화 스왑을 체결하고, 인프라가 낙후된 인접국가들에 SOC 건설에 자금을 제공하고, 무역대금 결제를 위안화로 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 등 위안화의 영향력 확장을 노리고 있다.

(모택동의 얼굴이 새겨진 위안화, 중국은 위안화의 세계화를 도모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달러와 위안화의 경쟁을 주목하고 있다. 자국의 역사적 지도자의 초상화가 새겨진 화폐를 가장 널리 유통시키기 위한 이 경쟁의 승자가 결국 21 세기 경제패권을 장악하는 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헤게모니를 어느국가가 가져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화폐전쟁에 정신이 팔린 정작 우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중국이 야금야금 북한 북부 경제특구로 지정된 지역들로부터 시작해 모택동의 얼굴이 새겨진 위안화를 배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래 대한민국이 통일된 시점에서의 국경선을, 혹은 한중 양국의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한 실효지배지역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말,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황금평 및 나선 등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 경제특구에서 중국 위안화가 북한 화폐와 함께 공식 화폐로 통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북한이 손을 벌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중국이다. 이 틈을 타고 중국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북한 북부지역의 경제적 지배를 통해 만주로부터 한반도 북부까지의 지역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경선을 암암리 혹은 공식적으로 넘나드는 자국상인들의 일련의 상거래활동으로 시작하여, 중국은행들의 차관제공이나 기업들의 직접투자 등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인민폐가 북한지역에 통용되게 된다면, 정치적/군사적으로 국경선을 긋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명목상으로는 북한의 영토이지만, 이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중국 기업에서 일을 하고, 중국제품을 쓰며, 이 모든 경제활동의 대금결제가 중국의 돈인 인민폐로 이루어진다면, 이 지역을 북한의 영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위안화 통용이 공식화 된 북한 내 경제특구)
<북 경제특구 화금평에 중 위안화가 공식화폐>, 매일경제 9월 27일자 기사 中

어떠한 화폐가 통용된다는 것은 그 화폐가 통용되는 지역이 화폐를 발행하는 나라의 영향권, 좁게는 경제적 영향권,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기축통화를 갖는다는 것은 전세계가 해당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권 안에 있다는, 즉 패권국가임을 뜻한다. 전세계 외환결제의 약 80% 이상이 미국의 화폐인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세계 상거래의 80%가 달러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국가 간의 무역은 해상운송로를 따라 이루어지고, 화물을 실은 선박들의 해상운송로에 대한 접근 전세계에 파견되어 있는 미국 해군의 승인 하에 이루어진다. 전세계의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인 원유는 대부분이 중동지역에 매장되어 있으며, 중동지역의 정치/안보는 궁극적으로는 펜타곤에서 결정된다. 결국, 기축통화가 달러라는 사실은 전세계 정치/경제가 미국의 영향력 안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지 워싱턴호 전투항모전단. 중동의 유조선부터 일본의 참치잡이 원양어선까지 지구 상 모든 선박들은 모두 미 해군의 감시 아래에 있다.)

반면, 어떤 화폐가 발행국 정부의 영토임에도 그 안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면, 해당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없거나, 해당지역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영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청제국 말엽 빈번한 화폐개혁의 실패로 인해 사회가 불안정해졌고, 중국을 정치나 군사적으로 공략하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잠식하고자 했던 영국은, 중국진출 교두보였던 홍콩에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영국계 은행들은 정부에 차관을 제공하고, 신용도가 높은 어음을 발행 및 유통시켜주며 결국은 발권권한마저 가져왔다. 이 후 중국대륙은 홍콩을 통해 대영제국에 의해 경제적으로 지배되었다. 중국이 홍콩에 반환된 이후에는 기존에 발권권한을 갖던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과 HSBC 은행 외에 중국계인 중국은행(Bank of China) 역시 발권권한을 갖게 되었지만, 이들은 모두 민간은행이며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People's Bank of China)과는 다르다. 홍콩은 중국령이지만 여전히 공산당이 통제하기는 어렵다. (사실 상하이를 금융허브로 육성하고자 하는 중국정부의 움직임은, 통제가 어려운 홍콩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고 금융시장을 정부통제 하에 두고자 하는 포석이 깔려있다는 의견이 있다)

(HSBC가 발행한 홍콩달러. 영국에게 경제적으로 지배받았던 중국의 뼈아픈 과거의 상징이다)

이처럼 어떤 지역에서 어떠한 화폐가 이용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중동과 같이 민족이나 문화의 이질성이 극단적으로 강하지 않은 경우, 어떤 지역이 해당국가의 정치적 영향권 안에 있기위한 선결요건은 경제적 통합이며, 경제적 통합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해당통화의 통용이다.

북한 일부지역에서 중국의 화폐가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북한은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 안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실제로 지금까지 북한에 투자한 중국기업은 100여곳에 달하고 총 투자금액이 3억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투자분야 역시 다변화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적 예속화를 위한 중국의 움직임들을 이 지역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동북공정과 맞물려 생각해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중국이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북한 북부지역에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위안화가 통용되고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된다면,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 종속시키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멀지 않은 미래에 통일이 다가온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든 이 지역은 격랑에 빠질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의 사회적 혼란 및 정치적 분열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지역을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 역시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 지역에 정치적/군사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특히 이 지역에 대한 자국 기업들의 투자가 상당부분 진행된 중국은, 자국 기업 및 자국민의 경제적 이익과 신변보호라는 좋은 명분을 얻게되고 이에 따라 이 지역의 치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북한 북부지역의 주민들 역시, 기존에 위안화를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편하고, 중국기업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여기서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다. 북한의 북부지역이 송두리째 경제적/정치적으로 중국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통일된 대한민국은 조선왕조가 지배했던 오롯한 한반도가 아니라, 고려왕조의 국경선을 갖게될지도 모른다. 고구려의 얼이 살아 숨쉬고 세종대왕이 4군 6진을 설치했던 우리 땅에서, 모택동의 얼굴이 범람하지 않도록 종합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고려의 국경선. 신의주와 나선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북부지역의 경제가 중국에 예속된다면 통일 대한민국은 한반도 전체가 아닌, 고려왕조의 국경선을 갖게 될 것이다.)
두산Encyber.com 자료
 
(세종대왕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설치한 4군 6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경선은 사실 상 세종대왕 때 설정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자료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IR/Geopolitics] 댜오위다오 or 센카쿠 열도 ?


최근 일본과 중국 간의 영토분쟁의 원인이 되는 "댜오위다오" 혹은 "센카쿠 열도"라고 불리는 곳을 구글 어스로 한 번 찾아보고 싶어졌다.

(센카쿠 or 댜오위댜오*)

(지도 상의 센카쿠 / 댜오위댜오*)

대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실로 작은 섬이다. 몇 주 전에 찾아보았을 때만 해도, 한자로 "댜오위댜오는 중국땅!" 이라고 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한 번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령 오키나와 현 센카쿠 섬 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센카쿠 / 댜오위댜오*)

어느새 댜오위댜오는 중국땅이라는 표기가 일본령 오키나와 현 센카쿠 섬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일본은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굴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일본 네티즌들이 사이버 상에서 해당 지역을 장악한 것이다.

사실 중국이나 일본 모두 자국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중국의 경우, 경제성장을 모토로 공산당의 강력한 통제 하에 국민들을 통합하고, 민족간 경제계층간 도농간의 갈등을 무마시켜왔지만, 미국 및 유럽의 경제위기로 수출에 타격을 입고 경제성장에 따라 인건비나 식품가격 등 전반적인 물가수준이 상승하면서 더 이상 이전처럼 저가제품을 박리다매하는 성장 및 사회통합 전략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는 20년 간의 장기 경제침체로 인한 고령화, 젊은세대의 의욕상실, 세대 간의 갈등 등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이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에도 일본 국민들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패권국인 미국 역시 자국 내 문제들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국가주의로 자국민들을 선동, 내부의 화를 외부로 돌리는 것은 내부가 불안정한 많은 국가들이 취해온 전략이다.

(링크 : 중국-일본 영토분쟁과 미국의 중립적인 태도**)

도광양회.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던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고, 주변국들은 중국이 과거처럼 힘에 의한 외교로 자신들을 억누를 것을 염려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일본 외에도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과 영해 및 영토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영토주권 및 경제/에너지 안보에 국가전략의 큰 방점이 있는 섬나라 일본에게 중국 해군의 증강은 섬뜩한 소식이다. 자국이 살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2차대전 전범국의 방위력 증강은, 더더군다나 오래도록 침략을 받아왔던 우리로써는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은 국방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전환했다.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자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억제하는 것을 제 1의 전략으로 삼는다. 떠오르는 중국을 확실하게 견제하겠다는 심산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과거 중원을 지배했던 한족 제국의 외교정책과 비슷하다. 이이제이 (以夷制夷). 오랑캐를 써서 오랑캐를 다스린다. 해당 지역의 떠오르는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강력한 우방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2차 대전 당시 아태지역에서 일본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을 지원했고, 냉전기에는 소비에트 연방을 억제하기 위해서 유럽에서는 독일,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앙 아시아에서는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다. 이번 영토분쟁 사건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리 땅 독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다.


(소중한 우리의 영토, 독도*)
* Google Earth 자료
** 정보분석기관 STRATFOR 자료 (www.stratf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