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IR/Geoplolitics] 소국의 선택, 협력과 공존

오늘날 국제정세와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구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한 이후로 20년간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은, 2008년도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로 인해 그 위신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장기간의 경제성장과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경제 뿐만이 아니라 군사, 외교, 정치 분야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미국은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아가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국방 및 안보정책에서 "Pivot to Asia"를 외치며 동아시아 지역 내 군사 및 경제 동맹 TPP (환태평양 동반자협정)를 구축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질세라 RCEP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구축해서 역내에서 영향권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안보는 철저하게 미국에, 경제는 철저하게 중국에 의존하는 작은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은 둘 중 어느 하나에게도 소홀할 수 없는 한 편, 둘 중 어느 하나의 변심에도 국가적 위기를 맞을 수 있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발군의 외교실력을 발휘하는 것 만으로는 무리다. 미국이건 중국이건 경쟁이 심화되는 어느 시점에선가는 역내 국가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고 소국인 대한민국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두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봉착한 소국들은 항상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명-청 사이에 갈등하던 조선 외에도, 르네상스 말엽에서 대항해 시대로 넘어가는 16 세기 지중해의 베네치아가 오늘날 우리와 비슷한 경우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기독교 연합 세력은 당시 전세계 무역의 중심이던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겨루었다. 당시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었는데, 주요 교역 대상국은 오스만 투르크였다. 반면, 교황청과 같은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문화적/정서적으로는 기독교 국가였던 터라 명분 상으로는 기독교 세력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도 비슷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이 가열된다면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고, 베네치아보다 운신의 폭이 더 좁은 우리나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자주국방능력을 확보하고, 내수의 확대를 통해서 대외의존도를 감소시킨다는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난 반세기 간의 국가전략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점진적인 개정이 필요로 할 것이다. 수출중심의 경제구조가 내수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의 소득이 증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경제정책이 전면적으로 수정된 뒤로도 긴 시간이 걸린다. 동시에 인구가 증가해야 하는데,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적고 노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에서 단기간 내에 내수를 증대시키기 위해 획기적으로 인구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낙타를 바늘 구멍에 넣는 것 보다도 어려워 보인다. 국방의 경우는 더 어려워 보인다. 북한과 이미 대치해 있는 상황이고, 단순히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군비증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이들만큼 커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힘 만으로 이들 사이에서 영토주권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이상적인 이야기들은 시간적인 측면, 즉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임박했다는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아가야 할까? 자연에서 작은 고기들은 떼를 지어 큰 무리를 형성해 다니면서 상어 등의 포식자들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한다. 국제사회라는 대양에서 작은 고기와 같은 우리 대한민국도 큰 고기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취할 수 있다. 국가들이 연합을 위해서 공조하는 것은 물고기들이 살기 위해서 군집해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겠지만, 그 근본원리는 같다. 어느 한 거대한 개체에 자신을 의존하는 것보다는 작은 개체들간의 협력을 통해서 큰 개체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ASEAN, 대만과의 협력강화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ASEAN 국가들 및 대만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거나해상에서 이미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등, 중국의 세력 팽창으로 인해 잠재적으로 국가 안보 상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국가들이다. 특히 대만과 같은 경우는 직접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주권을 위협받고 있다. 이들 하나하나는 작은 국가들이기 때문에 현재는 미국과의 군사협력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지만, 이들도 언제까지나 미국의 지원만을 바라볼 수 만은 없는 입장이다. 미국 역시도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 보다는 이 지역에 연합세력을 형성한다면 중국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때문에, ASEAN 역내 뿐만 아니라 대만과 한국까지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상호신뢰를 쌓아 상호 간 유사시 군사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선 까지 발전된다면, 중국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미국 역시 완충지대(Buffer-zone)로서 ASEAN-대만-한국의 협력을 인정하려 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ASEAN 의 현재 경제규모는 2011년도 기준 2.18조 달러로, 대만과 한국을 합친다면 그 경제규모는 3.76조 달러에 이른다. 이는 2011년 3.6 조 달러의 독일에 이어 세계 5위 규모로, 2017년에는 ASEAN 및 대한민국, 대만의 경제규모의 합은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규모인 6.1조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명목 GDP 기준,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이 정도 규모의 경제권이 하나로 엮인다면, 더구나 ASEAN 인구가 6 억에 달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젊은이 층이기 때문에 경제가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 또한 ASEAN 국가들이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ASEAN 국가들과의 교류는 현재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대외의존도 심화 및 역동성의 상실, 그리고 자원부족이라는 문제점들에 대한 좋은 활력소이자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SEAN 국가들은 반대로 기술력 및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의 투자 및 기술협력 등에 목말라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본다면, ASEAN 과의 경제적인 협력은 양측 모두에게 득을 주는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ASEAN 이외, 대만의 경우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IT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대만과 한국 기업들이 협력을 통해서 IT 기술 R&D에 투자한다면, 치고 올라오는 중국, 원천기술을 독점하는 일본과의 경쟁에 훌륭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군사-경제 협력이 증진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리더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ASEAN 국가들이나 대만보다 군사/경제적인 측면에서 앞서있다. ASEAN의 맹주인 인도네시아 역시 2011년도 현재 GDP는 약 8950억 달러로 1.15조 달러에 달하는 대한민국에 비해 근소하게 뒤져있다. 군사적으로도 우리 방위산업체들이 무기체계 및 장비들을 다량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한류' 및 'K-Pop'이 이들 동남아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며 'Made in Korea'에 대한 인지도가 한껏 고조되어 있다. 또, 이들 국가들이 대부분 한국의 경제개발전략들을 연구하고 벤치마크로 삼고 있다는 점들 역시 주목할만하다. 이처럼 ASEAN 국가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지역 내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자주적으로 지키자"는 하나의 이니셔티브를 갖고 주도적으로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ASEAN 국가 지도자들 및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반향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 "적벽대전"에 보면 새끼줄을 꼬아 짚신을 만들던 유비가 지푸라기 몇 개를 부하들에게 건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푸라기가 하나씩 있으면 쉽게 끊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약한 지푸라기도 여럿이 모여있으면 이렇게 끊어지질 않는다." 우리의 상황도 비슷해 보인다. 국제사회는 엄연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어느 쪽에 붙을지를 고민하면서 국가의 존망을 지도자들의 외교력과 정치력으로만 해결하기 보다, 힘 없는 세력들을 규합해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한다면, 게임의 룰을 바꿀 수가 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 인종, 다른 경제상황, 상호신뢰의 부재 등 많은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 중국이나 미국, 혹은 다른 제 3 자가 이처럼 하나의 연합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대국 사이에 홀로 고립된 국가는 항상 슬픈 운명을 맞아왔으며 군사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력 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국들 간의 공조와 협력을 통해 '강대국'은 아니더라도 '강소국 연대'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John F. Kennedy 대통령의 취임 연설 중 일부를 적어보고자 한다.
"United, there is little we cannot do in a host of cooperative ventures. Divided, there is little we can do - for we dare not meet a powerful challenge at odds and split asunder."

5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말이 더욱더 절실하게 와닿는 요즘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