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오는 금요일 밤이다. 거리에는 불빛, 음악소리, 그리고 "프라이데이 나잇"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초저녁에는 레스토랑과 카페, 옷가게에 사람들이 붐비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그 발걸음은 어김없이 술집으로 향한다. 거리에 즐비한 술집들은 이름과 간판 빼고는 차이점을 찾을 수 없고, 모두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클럽 역시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술을 마시는 것 이외에는 달리 대안으로 할만한 것들이 없다. 거리에는 술집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말에 한 번쯤은 "왜 할 것이 이렇게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주말, 또는 자유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상관관계나 전후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나는 놀이문화의 빈곤과 젊은이들의 음주 문화의 발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 이 중에도 특별히 대체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는 제한된 시간만이 주어져 있고, ‘놀이’의 선택의 폭은 제한되어 젊은이들의 수요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자연히 대체재인 ‘음주’를 찾는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음주’가 만연해있어 ‘놀이’가 뚫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음주’의 독식 현상은 더욱 강해진다. 이처럼 선후관계는 어찌되었든 ‘음주’와 ‘놀이’의 발전은 우리사회에서만큼은 현상적으로 역의 관계를 갖는다.
우리의 ‘음주’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알코올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음주가 이제는 여성들에게도 관대해지면서 여성 음주인구의 증가에 따라 전체 국민들의 음주량이 늘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실제로, 통계자료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0년 전 맥주, 위스키, 와인의 소비량은 각각 157만 8 천여 kl, 1만여 kl, 6천여 kl 에서 09년도에는 각각 200만 2천여 kl, 2만 5천여 kl, 4만 5천여 kl로 증가했다. 맥주는 약 27%, 위스키는 약 150%, 와인은 약 650% 가량 증가했다. 여성 음주인구를 고려하더라도 증가한 수치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의 놀이문화가 빈곤하게 되었고, 음주문화는 발달하게 된 것일까? 우선 둘의 관계에 있어 나는, 놀이문화의 부재가 음주문화의 발전에 선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먼저 우리나라의 압축적인 경제/사회의 성장이라는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최빈국에서 반세기만에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사회적으로는 해방 후 50년 간, 군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그 후 보수성향의 정당에서 진보성향의 정당으로, 그리고 다시 보수성향의 정당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일본의 경우, 작년 민주당 하토야마 총리가 당선된 것이 민주화 이래 처음으로 정권이 바뀐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모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경제와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하고 고도성장을 누리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인간적인 삶이나 즐거움 등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힘들고 거친 삶을 달래줄 무엇인가는 필요했다. 이런 우리 국민들의 애환을 가장 경제적으로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술이었다. 술은 일시적으로 감정을 부드럽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게다가 값이 싸기까지 하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소주나 막걸리를 싸게 제조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놀이’보다는 ‘음주’에 의존하는 여가시간을 보내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경제가 발전된 이후에도 여전히 놀이문화가 음주를 대체하지 못하는 것에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이는 우리사회 내에 만연한 동조화 풍조 때문이다. 거리에 천편일률적인 식당이나 술집들뿐인 것은, 한 가게가 잘 되면 다른 업주들이 모두 이를 모방해 획일화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와인 붐이 불자 번화가에는 비슷한 컨셉의 와인 바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몇 년 전부터 전세계적인 사케 열풍이 불자 이자카야(일식주점)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의 막걸리 열풍으로 인해, 기존에 소주를 팔던 술집들조차 업종을 막걸리 전문점으로 바꿨다. 술집들이 잘 되기 때문에, 새로운 업종이나 혹은 새로운 술집을 시도하기보다는 선구자를 모방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다.
소비자들, 즉 일반적인 젊은이들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획일화되고 관습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체면과 집단을 중시하는 동양적인 가치관과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이 빚은 결과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해외에서 오랜기간 살다 왔거나 어딘가 남들과 다른 아이는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따돌림 현상은 어디에나 있지만 특히 집단주의가 강하고 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한국과 일본의 경우 정도가 심하다.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놀이문화를 시도해보려는 젊은이들의 도전정신 내지는 창의정신을 막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기존의 관행을 거부하면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대학교 MT나 신입생 환영회, 혹은 회사의 신입사원환영회나 회식자리에서 술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생활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젊은이들은 구시대적인 ‘음주’ 관습에 다시 물들게 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한 놀이문화의 부재로, 우리 젊은이들은 지금 병들어가고 있다. 실제로 간경화, 간암, 알콜중독 등의 질병으로부터,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업무지장 등 음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국회 보건복지 위원회의 김금래 의원은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2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미국의 경우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약 $ 120억 (한화 약 13.5조)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 인구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사회에 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의학연구결과에 따르면 과도한 음주는 2세에 돌연변이나 기형을 출산할 확률을 증가시킨다.
건전한 놀이문화들이 많이 생겨난다고 음주문화를 종식시키거나 완벽하게 대체하진 못할 것이다. 둘 사이가 대체관계에 있긴 해도, 술 만의 독자적인 영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문제가 생겼던 연인이나 친구들 사이에 맨 정신에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진솔한 대화가 필요할 때, 즐거운 일이 있어서 여럿이서 기분 좋게 취하고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등 알코올의 힘이 절실할 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현재 놀이문화의 부족으로 인해 우리 젊은이들의 여가시간 알코올 의존도는 너무 높다. 놀이문화들이 다양해져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면 음주의 대체재가 늘어나고 이는 젊은이들의 알코올 소비량을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