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문화와 음주에 대한 학교 과제 같은 장문의 글을 쓴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 사이 한달 간, 음주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새로운 놀이문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여지없이 관습에 사로잡혀 과음하고 다음날 앓는 소리를 하며 일어나 힘들어하는 필자 자신을 보면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는 속담이 생각나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지난 번 글을 통해 나는 놀이 문화와 음주 문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정리하고 놀이 문화가 기형적 음주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다양한 놀이문화가 생겨나고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급속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범국민적으로 '놀이'로 대변되는 여가나 기타 활동들은 등한시 하고, '일'에 모든 중심을 맞추었으며, 이 때 쌓이는 스트레스를 '술'로 풀게 된 데에서 놀이 문화의 부재와 음주문화의 기형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사회적 관습에 젖은 젊은이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구조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발생한 기형적 음주문화는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므로, 음주를 대체할 수 있는 놀이문화를 발전시켜 음주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사실 놀이문화의 발전은 단순히 불건전한 음주문화에 대한 대안일 뿐만이 아니라 건전하게 발전되었을 때에는 그 자체가 사회에, 또 개인에게도 큰 효용을 수반한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고 오랜 세월에 걸쳐 선조들에 의해 전수되어왔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여백'이라는 것을 중시해왔고,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부호였던 메디치 가문도 일 년에 일정 기간은 지방의 별장에서 보내면서 일에 관계되는 것은 일체 금하면서 여가활동을 즐기기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 외에도 영어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꼭 어렵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놀지 않고 일만, 혹은 공부만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쳐버릴 것이다.
이렇게 직관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정작 '놀이'가 우리에게 어떻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확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놀이'의 중요성, 특히 건전한 놀이문화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그리고 매우 가시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이러한 모든 것들의 전제는 '놀이'가 건전하다는 것이다.
우선, 놀이를 통해 업무 효율성이 증대되고 생산성이 높아진다. 조금 궤변같이 들리겠지만,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예전에 EBS에서 '공부 잘 하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본 적이 있다. 낮에는 뉴욕대학교(NYU)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저녁에는 줄리어드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조승연이라는 분의 강의였는데, 아주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같은 과목을 계속 공부하는 것보다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과목을 바꾸어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뇌가 한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고, 그 임계치에 다른 과목으로 바꾸어주면 효율성이 극대화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한다. 계속 업무나 공부만 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집중도가 떨어져 시간을 죽이게 된다. 일벌레나 공부벌레의 경우도 계속 하던 것만 한다면 능률이 떨어진다. 오히려 시간을 비우고 놀이와 휴식을 병행하는 것이 전반적인 효율성 향상에 도움을 준다.
또 놀이는 기존 업무나 공부에는 사용되지 않는 감각이나 지성 등을 자극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증가시킨다. 흔히들 좌뇌와 우뇌가 있고, 각각 이성과 감성을 담당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업무나 공부는 좌뇌를 자극하는 영역이지만 놀이는 우뇌를 자극한다. 더 정확하게 암기, 분석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순수한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감성이 풍부해지고 상상력과 창의성이 자극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된다. 구글이나 애플과 같이 혁신과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IT 기업들은 사내에 여러가지 '놀이'시설들을 구비해놓고 직원들이 '놀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으로는 아이디어의 시대이고 아이디어의 근원이 '놀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꿰뚫은 것이다. 특히 그 '놀이'의 수준이 높을수록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의 수준 역시 높아진다. 이것이 건전한 놀이문화의 확립이 앞으로 더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놀이'가 중요한 이유는 카타르시스이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현대인은 단순히 육체적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정신적, 감정적 스트레스에도 노출되게 되었고, 육체적 스트레스가 축적되면 단순히 피로감을 느끼거나 건강이 상하게 되는 반면 이러한 스트레스가 제때 해소되지 않으면 정신적 이상이 발생하거나 하는 큰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 스트레스 해소의 창구가 없다면 그 응축된 에너지가 위험한 방향으로 분출될 수 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나, 게임중독으로 인해 생명을 잃거나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 방에 박혀 밖으로 나와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는 오타쿠나 코쿤족들은 정신적/감정적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아 발생하는 기형의 전형적인 예이다. 소수 워커홀릭이나 공부벌레를 제외하고는 일이나 공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건전한 놀이문화를 통해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용들을 통해 '놀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의해 놀이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업무효율성을 증가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간 당 효용, 즉 같은 시간에 삶에 대한 만족도를 증가시킨다 (아주 단순한 예로,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다가 놀면 매우 즐겁고, 또 잠시 놀다가 일로 돌아가야 능률이 오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놀이는 우뇌를 자극해 창의력이나 상상력과 함께 감수성을 발달시키고, 풍부한 감수성은 삶을 풍성하게 한다. 또 놀이는 해로운 정서적/감정적 스트레스를 배출,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한다.
결국 건전한 놀이문화가 확립되어야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또한 놀이는 정서적/감정적 스트레스를 배출시키며 개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증가시키고 이는 사회에 긍정적인 외부효과, 즉 사회적 엔돌핀이 증가해 사회가 건강해진다. 건강한 사회는 개개인에게 건강하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건강한 성장을 가능케 한다.
이 쯤 되면, 놀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