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이'를 다른 어떠한 것들 - 그것이 여가든 취미든 - 과 구분짓는 가장 큰 요소는 '그 목적이 유희적인 요소에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는 '놀이'와 여가나 취미 사이의 교집합에 존재하는 항목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장 1차적으로 '놀이'의 목적은 '재미' 또는 '유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면 놀이가 아니다.
[지식습득을 위한 서적의 독서는 놀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신적 유희를 위한 독서는 '놀이'로 분류할 수 없을까?]
여기에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유익한, '좋은 놀이'의 선결요건으로, 우선은 건전해야 한다. 건전하다는 것은 유희적 자극이 적절한 수준이어서 육체 및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건전한 자극을 주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같은 유희를 위한 목적이지만 마약이나 폭음은 극도의 자극으로 정신 및 육체 건강을 해친다. 도박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고 적절한 자극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적절히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실제로 적절한 운동을 통해 육체적 자극이 주어질 때에나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경우에 엔돌핀 등의 작용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철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모두 설명해내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얼추 이것이 어떠한 것을 이야기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 )
[최근 공개된 무한도전팀 회식사진. 좋은 사람들과의 적절한 음주는 감정/신체적 카타르시스를 가져옴에 틀림없다]
"21세기는 어떠한 모습인가?"와 "우리사회는 어떠한 사회이며, 한국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개별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제시해보겠다.
기본적으로 21세기의 첫 십 년을 지나는 시점에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모습은 과도기 말기적인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농경사회적인 문화에서 근대사회적인 문화로 탈바꿈을 하는 과도기가 막바지에 달해 새로운 형태의 사회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시점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어느정도 안정되었지만 아직까지 불안정한 모습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 경제 부문에 있어서는 역시 개발도상국이나 신흥시장의 수준은 넘어섰지만 선진국으로는 완벽히 들어서지 못한 점, 시민의식의 수준이 높아졌지만 곳곳에서 성숙치 못한 행동들을 보게되는 점 등이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사회의 발전은 정치 및 경제적인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시민의식의 고양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농경민족이었다. 농사는 혼자 짓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같이 도와가며 짓는 편이 훨씬 유리했고,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풍부한 지식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으며, 이 때문에 대가족을 꾸리고 여럿이서 몰려 살며, 서로의 일을 돕고, 어른을 공경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효'를 바탕으로 한 유교사상이 오랫동안 국가의 통치철학이었던 것은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연유로, 우리 사회는 '효'와 '충', '의' 그리고 '정'이라는 가치가 지배해왔다.
[유가사상의 창시자 공자. 공자와 그의 가치, 사상은 농경사회였던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는 모든 것을 바꿨다. 왕권을 지탱해온 '충'은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대신하게 되고, 가부장제 대가족제도를 지탱해온 '효' 역시 아파트로 대변되는 '핵가족화'로, 또 '의'나 '정'은 사유재산권 및 개인주의로 대체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수천 년 동안 농경사회였던 우리 사회가 완전하게 이전의 가치를 내버릴 리는 만무하다. 때문에 상충되는 가치가 공존하면서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거나,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농경사회의 전통과 가치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6.25 전쟁을 필두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현재에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나, 60년 가량이라는 짧은 기간을 고려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경제적으로는 산업화를, 시민의식은 성숙화를 잘 이룩해 왔다고 생각한다. 군사정권에서 민주화로 넘어온 이래 여당이 2번이나 바뀌고, 6.25 이후 UN 제 2위 빈국이 현재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먹고 사는 문제에 치여있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공질서를 준수하는 모습은 여느 나라에서 보기 쉽지 않은 모습들이다.
['11년 현재, 대한민국 연간 GDP는 $ 1조 1638.5억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 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
[월드컵 응원 후 쓰레기를 치우는 붉은 악마들. 우리사회의 시민의식도 한층 성숙해가는 것 같다]
결국 앞으로 한국사회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선진사회로 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에 대한 관건은, 여지껏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가치관, 즉 미덕을 살리면서 새롭게 받아들인 좋은 가치들(예컨대, 개인에 대한 존중이라던가 민주적인 의사결정 등의 가치들)을 잘 융화시키고, 사회 전반적으로 이러한 가치관이 공유되는 기반을 바탕으로, 모든 영역이 유기적인 발전을 영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놀이문화를 생각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면을 잘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에 비해서는 확연히 개인주의적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함께하는 ‘정’과 같은 공동체적인 가치에 여전히 익숙하다. 학생들을 보면, 혼자 밥을 먹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 하는 운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급식을 먹든 도시락을 먹든 삼삼오오 모여서 먹고, 운동도 다 같이 할 수 있는 축구와 같은 구기종목을 좋아한다. (물론 부정적으로 표출되어 패싸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 한 가지 놀이문화와 관련한 우리사회의 특징 중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우리사회가 굉장히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짧은 기간 동안에 우리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구어왔다. 이러한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혹자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다고 지적할 수도 있고, 혹자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또 지정학적인 위치 상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평론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고, 운도 좋았다. 지정학적으로도 공산권을 견제하기 위한 서방세계의 노력에 기인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주도하는 사람들은 몇몇 소수일지 몰라도, 그 변화가 실제로 발생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움직여야 한다. 짧은 시간에 이만큼 많은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한국인들이, 우리 한국사회가 그만큼 다른 사회에 비교했을 때에 역동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개인적으로는 한류가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도, 이 역동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일본이나,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를 주도해온 중국의 문화가 아닌 우리 문화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세계인들이 그만큼 더 많은 역동성을 느끼고 여기에 매료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류 콘서트. 한류열풍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21세기 한국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공동체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이전 세대들에 비해서는 훨씬 개방적이며 개인주의적이다. 또, 이들은 매우 역동적이다. 이러한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순수하게 ‘재미’ 또는 ‘유희’를 목적으로 하며, 건강하고 적절한 자극을 주어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는 ‘놀이’문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음 번에 개제하게 될 글을 통해, 앞서 제시한 선결요건들에 부합하는 ‘놀이’문화를 탐색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