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9일 수요일

[Society]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놀이문화가 필요하다 ③-2 : 놀이문화의 선결요건

'놀이'란 무엇인가를 정의내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실 '놀이' '취미' '여가'로도 대체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 사이의 영역들이 애매모호해 구분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놀이'와 여가/취미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칼로 무 자르듯이 확실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음악감상이나 독서, 우표수집을 취미나 여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놀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을 가는 것, 클럽에 가는 것 등은 여가나 취미라고 할 수는 없지만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놀이'를 다른 어떠한 것들 - 그것이 여가든 취미든 - 과 구분짓는 가장 큰 요소는 '그 목적이 유희적인 요소에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는 '놀이'와 여가나 취미 사이의 교집합에 존재하는 항목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장 1차적으로 '놀이'의 목적은 '재미' 또는 '유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면 놀이가 아니다.


[지식습득을 위한 서적의 독서는 놀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신적 유희를 위한 독서는 '놀이'로 분류할 수 없을까?]


여기에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유익한, '좋은 놀이'의 선결요건으로, 우선은 건전해야 한다건전하다는 것은 유희적 자극이 적절한 수준이어서 육체 및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건전한 자극을 주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같은 유희를 위한 목적이지만 마약이나 폭음은 극도의 자극으로 정신 및 육체 건강을 해친다. 도박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고 적절한 자극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적절히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실제로 적절한 운동을 통해 육체적 자극이 주어질 때에나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경우에 엔돌핀 등의 작용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철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모두 설명해내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얼추 이것이 어떠한 것을 이야기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 )


[최근 공개된 무한도전팀 회식사진. 좋은 사람들과의 적절한 음주는 감정/신체적 카타르시스를 가져옴에 틀림없다]


"21세기는 어떠한 모습인가?""우리사회는 어떠한 사회이며, 한국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개별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제시해보겠다.

기본적으로 21세기의 첫 십 년을 지나는 시점에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모습은 과도기 말기적인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농경사회적인 문화에서 근대사회적인 문화로 탈바꿈을 하는 과도기가 막바지에 달해 새로운 형태의 사회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시점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어느정도 안정되었지만 아직까지 불안정한 모습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 경제 부문에 있어서는 역시 개발도상국이나 신흥시장의 수준은 넘어섰지만 선진국으로는 완벽히 들어서지 못한 점, 시민의식의 수준이 높아졌지만 곳곳에서 성숙치 못한 행동들을 보게되는 점 등이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사회의 발전은 정치 및 경제적인 발전, 그리고 이에 따른 시민의식의 고양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전부터 농경민족이었다. 농사는 혼자 짓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같이 도와가며 짓는 편이 훨씬 유리했고,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풍부한 지식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으며, 이 때문에 대가족을 꾸리고 여럿이서 몰려 살며, 서로의 일을 돕고어른을 공경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를 바탕으로 한 유교사상이 오랫동안 국가의 통치철학이었던 것은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연유로, 우리 사회는 '' '', '' 그리고 ''이라는 가치가 지배해왔다.

[유가사상의 창시자 공자. 공자와 그의 가치, 사상은 농경사회였던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는 모든 것을 바꿨다. 왕권을 지탱해온 ''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대신하게 되고, 가부장제 대가족제도를 지탱해온 '' 역시 아파트로 대변되는 '핵가족화', '' ''은 사유재산권 및 개인주의로 대체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수천 년 동안 농경사회였던 우리 사회가 완전하게 이전의 가치를 내버릴 리는 만무하다. 때문에 상충되는 가치가 공존하면서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거나,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농경사회의 전통과 가치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6.25 전쟁을 필두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현재에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나, 60년 가량이라는 짧은 기간을 고려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경제적으로는 산업화를, 시민의식은 성숙화를 잘 이룩해 왔다고 생각한다. 군사정권에서 민주화로 넘어온 이래 여당이 2번이나 바뀌고, 6.25 이후 UN 2위 빈국이 현재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먹고 사는 문제에 치여있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공질서를 준수하는 모습은 여느 나라에서 보기 쉽지 않은 모습들이다.

['11년 현재, 대한민국 연간 GDP는 $ 1조 1638.5억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 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


[월드컵 응원 후 쓰레기를 치우는 붉은 악마들. 우리사회의 시민의식도 한층 성숙해가는 것 같다]


결국 앞으로 한국사회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선진사회로 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에 대한 관건은, 여지껏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가치관, 즉 미덕을 살리면서 새롭게 받아들인 좋은 가치들(예컨대, 개인에 대한 존중이라던가 민주적인 의사결정 등의 가치들)을 잘 융화시키고, 사회 전반적으로 이러한 가치관이 공유되는 기반을 바탕으로, 모든 영역이 유기적인 발전을 영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놀이문화를 생각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면을 잘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에 비해서는 확연히 개인주의적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함께하는 과 같은 공동체적인 가치에 여전히 익숙하다. 학생들을 보면, 혼자 밥을 먹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 하는 운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급식을 먹든 도시락을 먹든 삼삼오오 모여서 먹고, 운동도 다 같이 할 수 있는 축구와 같은 구기종목을 좋아한다. (물론 부정적으로 표출되어 패싸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 한 가지 놀이문화와 관련한 우리사회의 특징 중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우리사회가 굉장히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짧은 기간 동안에 우리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구어왔다. 이러한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혹자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다고 지적할 수도 있고, 혹자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또 지정학적인 위치 상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평론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고, 운도 좋았다. 지정학적으로도 공산권을 견제하기 위한 서방세계의 노력에 기인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주도하는 사람들은 몇몇 소수일지 몰라도, 그 변화가 실제로 발생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움직여야 한다. 짧은 시간에 이만큼 많은 변화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한국인들이, 우리 한국사회가 그만큼 다른 사회에 비교했을 때에 역동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개인적으로는 한류가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도, 이 역동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일본이나,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를 주도해온 중국의 문화가 아닌 우리 문화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세계인들이 그만큼 더 많은 역동성을 느끼고 여기에 매료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류 콘서트. 한류열풍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21세기 한국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공동체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이전 세대들에 비해서는 훨씬 개방적이며 개인주의적이다. , 이들은 매우 역동적이다. 이러한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순수하게 재미또는 유희를 목적으로 하며, 건강하고 적절한 자극을 주어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는 놀이문화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음 번에 개제하게 될 글을 통해, 앞서 제시한 선결요건들에 부합하는 놀이문화를 탐색해보도록 하겠다.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Society]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놀이 문화가 필요하다 ③-1 : 21세기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어떠한 놀이가 필요한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놀이 문화가 필요하다'라는 3부작 시리즈 성 글의 첫 회를 쓴 지도 1 년이 지났다. 첫 글에서는 우리 사회의 '놀이'문화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주'의 폐해와 이 것이 어떻게 놀이문화와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었고, 두번째 글에서는 놀이문화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다루었다. 마지막 글은 '음주'에 대한 대안으로서 한국 젊은이들을 위한 '놀이'문화를 제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에게는 어떠한 '놀이'문화가 필요한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많은 것들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아야 했다. '놀이'에 대한 정의, 21세기는 어떤 시대인지, 한국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떤지와 같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과 관련된 질문으로부터, 내가 제시한 의문 -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가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고 너무 비관적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까지 여러가지 생각들을 다시 되짚어보아야만 했다.

앞선 글들에 따르면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놀이'문화에 대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1) 놀이 문화가 천편일률적이고 제한적이어서 선택의 폭이 좁다
2) 쉽게 떠오르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는 음주인데, 이는 과도해질 경우 불건전하며 사회경제적 비용이 상승한다.
3) 새로운 놀이문화를 창조하려는 시도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회식자리에서 양주-맥주 폭탄주를 제조하는 모습, 폭탄주는 기형적인 우리사회 폭음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비건전한 폭음문화라는 악순환이 연속되고 사회경제적 비용과 그 밖의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 앞선 글들의 요지였다.

두번째 글은 '놀이'문화가 왜 중요할까에 대한 글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회와 개인에게 큰 효용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개인은 업무효율성 향상으로 생산성이 제고되고 상상력 및 창의력이 자극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며, 스트레스가 극심한 사회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정서적/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개개인에 있어서 삶의 질과 생산성이 높아지며 이는 결국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불경기에는 알콜 소비량이 늘어난다는 통설(특별히 소주)을 감안하더라도, 나날이 늘어가는 알코올 소비량이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폐해, 카타르시스가 분출되지 못하여 발생하는 폐단들 (예를 들면, 묻지마 범죄나 게임 중독자들), 창의력이 제한되어 성장에 한계를 느끼는 기업들과 국가경제, 또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술 외에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놀이' 등은 우리 사회에 젊은이들을 위한 '놀이'가 부족하다는 것이 잘못된 인식만은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청소년 게임중독 방지를 위한 심야 게임접속 제한 관련 법안이 이슈이다. 과연 규제만이 유일한 해법일까?]

그렇다면, 21세기 우리사회 젊은이들에게는 어떠한 '놀이'문화가 필요할까? 21세기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놀이'문화를 정의하기 전에 다음 세 가지 물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1) '놀이'는 무엇인가?
2) 21세기는 어떤 시대인가?
3) 한국인, 한국 젊은이는 어떤 이들인가?

사실 이 세 가지 질문 모두 누구라도 대답하기 어렵고, 권위자가 아닌 이상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회의 젊은이로써, 내가 생각하는 '놀이'는 무엇이고, 21세기가 어떠한 시대이고, 한국 젊은이는 어떠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제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 자신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대변하지는 않을지라도 자아성찰에 가까운, 그래서 더 솔직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뒤에 이어질 글에는 다음 세 가지에 대한 나 나름의 답을 제시해봄과 더불어, 이에 적절한 새로운 대안, 21세기 한국 젊은이들을 위한 '놀이'문화를 제안하는 방향으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