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IR/Geopolitics] 2012년 한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어제의 보도는 한반도 전체를 불안감에 빠뜨렸다. 코스피 지수는 3.4% 하락했으며 달러대비 원 환율 역시 1.6% 가량 상승해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 번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단지 어제 발표되었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들이 기정사실이었다.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며 전문가들은 이미 올해 내지는 내년에 그가 사망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게 된다는 사실 역시 기정사실이었다.

장례는 총 10일에 걸쳐서 치뤄진다고 한다. 유래없이 긴 장례이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부터이다. 물론, 북한의 지도층은 어떻게든 현상유지를 통해 현재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한반도에 대규모의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한반도의 정세가 자국의 태평양 전략과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미국의 개입은 불보듯 뻔한 일이며, 북한은 단기적으로 한반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개입에 의해 자신들의 모든 기득권과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또한, 6.25 때와는 달리 북한을 뒷받침해주는 세력이 없다. 있다고 하여도 현재로서는 지구 상 어느 국가나 단체도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도전할 수 없다. 때문에 북한 주도의 전면전의 가능성은 낮다.

전면전의 가능성은 적지만, 북한 내부의 불안정한 경제상황과 지도층 및 군부 내에서의 권력분쟁을 조정하고, 지도자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김정은은 2011년 천안함사태와 연평도 포격 등과 같은 형태의, 혹은 더 큰 규모의, 무력도발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군은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백령도 및 연평도 일대에 서북도서 사령부를 창설하는 등 국지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내부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불만을 잠식시켜야하는 김정은의 입장 역시,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2012년은 김정은 정권에게 있어서 중요한 해이다. 우선,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받기로 한 해가 2012년이며, 강성대국의 목표를 달성하기로 한 해 역시 2012년이다. 또, 김일성 전 국가주석의 탄생 100주년 역시 2012년으로, 새로운 지도자인 김정은에게는 어떠한 성과라도 내어, 세습에 대한 명분을 확실히 해야만 군부로부터의 신뢰를 얻어 온전히 권력을 이양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내년 4월과 12월에 총선과 대선이 각각 있다. 북한은 2002년 월드컵 때의 연평해전, 2011년 G20 회의 전 천안함사태 및 연평도 포격 등 우리의 국가적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무력도발을 자행해왔다.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 전, 무력도발을 통해 사회의 혼란을 가중되며, 인터넷 등지에 통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듯한 이미지가 확산되어 북한 정권에 호의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최선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단순히 남한과 북한만의 대립의 장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는 공산진영과 민주진영 대립의 최첨단이었다. 오늘날 역시,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과 러시아, 패권국으로써 동북아 및 환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미국, 그리고 어떻게든 자국의 이익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힘겨루기가 보이지 않게 펼쳐지고 있는 전선이다. 더군다나 2012년에는 미국과 러시아 모두 대선이 있으며, 중국의 경우 권력이양이 있다.

러시아의 경우 국가주의자이자 강경론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으며, 차기 중국 주석으로 거론되는 시진핑 부주석 역시 샹하이 방으로 현재의 후진타오 주석과 비교했을 때, 강경론자로 알려져있다. 미국 역시 경기상황을 고려했을 때, 현재의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우며, 공화당 후보자가 당선될 경우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보다 강경한 국제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경우 대만 및 남중국해 등 영토/영해 문제부터 양국의 무역 및 환율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한반도 역시 이들의 관심지역이다. 미국에게 한반도는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극동 아시아지역의 가장 중요한 축이자, 환태평양 전략을 투사하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반대로 중국에게 한반도는 외부세력의 지역침투 거부전략(area-denial strategy)의 완충지대이다. 양국 모두 불안정 사태를 바라지는 않지만, 한반도 내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를 견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때문에, 미-중 양측에 모두 강경한 지도부가 들어서게 될 경우, 김정은이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의 불만을 잠식시키기 위해 자칫 섣부르게 무력도발을 자행했다가는 한반도 뿐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보가 격랑 속에 빠질 위험이 있다. 조금 비약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동북아시아 안보의 불안정은 태평양 전체의 불안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평화에도 역시 매우 위협적인 요소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상적으로는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되 현실적으로는 북한의 무력도발 및 전쟁의지를 억지하기 위해 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는 한 편, 국제정세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해 이에 따른 대응방안을 미리미리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대북정책의 기조를 이벤트성 사건이나 대중들의 변덕에 따라 자꾸 바꾸기보다는, 좀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획을 세우고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일관성 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유와 평화는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