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Politics / Economics] 재정절벽에 관한 짧은 생각

얼마 전 중동 출장 중, 숙소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TV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고 있었다. 아랍어 방송들 위주로 나와 화면만 3초씩 보고 지나가던 중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방송이었던 블룸버그 TV에서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블랙록의 CEO 래리핑크. 블룸버그 TV에서 재정절벽과 관련하여 핑크 CEO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던 차였다. 핑크 CEO는 공화당 및 민주당 의원들 몇몇을 만나고 왔으며, 미 의회가 경제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일련의 딜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보다보니 문득, "재정절벽"의 위험이 미디어에서 다소 과대평가 되어 보도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연간 GDP 의 3배, 약 $3.6조를 움직이는 금융계의 거물, 래리 핑크 블랙 록 CEO)


'재정절벽'이란 수년간 지속되어 오던 세금감면혜택과 재정지출 프로그램이 동시에 만료되어 경제에 충격을 주는 것을 뜻한다. 자국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방법론에서 민주당은 정부지출 확대를, 공화당은 세금감면을 주장해왔다. 대통령과 상원 다수당은 민주당이지만, 하원 다수당은 공화당이기 때문에 이 둘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견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12년이면 만료되는 세금감면혜택의 연장과 재정지출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재정적자'의 위험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재정절벽이 현실화될 경우에는 내년 미국 경제는 0.5% 위축되며 현재 7.9% 가량인 실업률도 9%대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서로대립하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징인 코끼리와 말. 심볼이 의외로 귀엽다)


개인적으로는, 양당이 세금감면혜택이나 재정지출 둘 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모두를 연장하는 데에 합의할 것이지만 이러한 '빅 딜'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사되지 않다가 가장 극적인 순간에 성사되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생각한다. 연출에 능한 미국 미디어는 다음과 같은 보도를 계속해서 내보낼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분열되어 있어 보이지만, 우리는 이 나라가 그대로 주저앉도록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직면하게 되는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전형적인 미국의 전략들 중 하나이다. 미국은 국론을 하나로 수렴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반에는 간과하던 잠재적 위험들을 특정 단계가 지나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외부적인 요소들이 활용된다. '60 ~ 70 년대의 소비에트 연방, '80년대 일본 및 일본기업들, 2000년대 초반에는 알카에다의 아랍 내 세력권 확장, 그리고 최근 부상하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외부요소들을 국가의 '심대한 위협'으로 설정되는데 사용되었다. 때로는 그렇게 많은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내부적인 문제들이 부각되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해결된 '90년대 초의 쌍둥이 적자, 그리고 새로운 혁신의 부재 등이 좋은 예 이다. (사실은 가장 많은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최근 몇년 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중국인 또는 중국 기반의 악당들이 많이 나왔다.
영화 "다크나이트" 중)

'가상의 적'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요소들은 물론 미국의 국가안보, 경제 및 사회안전성 등에 잠재적인 위협을 끼치기는 했으나 심대한 위협을 끼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처럼 외부의 '가상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국민들을 통합하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안들을 도출해내고, 결론적으로는 새로운 발전을 위한 동력을 제공하는 모멘텀이 되어왔다. '재정절벽'에 관련한 논란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설정된 '가상의 적' 아닐까?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