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믿을 수 없는 해였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투자은행 Lehman Brothers의 파산이 기폭제가 되어, 유수의 굴지 투자은행과 금융기관들이 무너지거나, 인수∙합병되거나, 혹은 국유화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는 단순히 금융기관들의 몰락뿐만이 아니라, 다른 산업 군과 경제 전반에도 강한 충격을 가져오고 있다. 미국의 big 3 자동차 업체–Chrysler, GM, Ford-를 비롯해, 대표기업인 GE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호전시켜보기 위해, 새롭게 교체된 오바마 행정부는 7000억 달러에 달하는 전례 없는 구제금융 안을 국회에서 가결시켜 시행하기로 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침체를 막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중앙 정부의 노력은 아직까지는 별 실효성이 없는 듯 하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오늘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각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원인과 해결책,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나름의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금융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견해는 다음과 같다. 2001 년도 IT 버블의 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금리를 낮추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침체를 막았고, 이러한 팽창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낮은 금리로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도록 장려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으므로 주택을 담보로 잡은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 그들이 상환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범위의 대출을 허용했다.
한편으로는 낮은 저축률로 인해 예금이 부족한 미국의 은행들은 이러한 주택담보대출(Mortgage Loan)을 증권화했고 국책기관이나 다름없는 지니메이나 프래디맥과 같은 기관들은 이러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유동화한 증권들에 대해 미국 국채와 같은 신용등급을 매겼다. 이처럼 트리플 A로 포장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은 미국의 금융기관들을 비롯해, 고수익과 투자지역의 다각화를 필요로 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금융기관들에게는 매력적인 투자자산이었다. 은행들은 또한 CDS 등의 복잡한 파생상품들을 개발해 유통시켰고. 이제 전 세계의 금융기관들은 이 복잡한 상품들로 인해 하나의 가시덩굴처럼 뒤엉켜버렸다. 한 기관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그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지니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연체율은 높아져갔고, 채무자들의 지속적인 연체와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서브프라임 모기지증권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은 유동성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상품에 정통했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시장과 투자자들의 심리는 급속도로 냉각되고 전 세계의 금융기관과 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진다.
일반적인 경제학자들은 이 정도 선에서 원인 분석을 마친다. 하지만, 이 정도 선에서는 ‘왜 부동산 버블이 꺼지고 왜 대출상환이 연체되거나, 혹은 불이행되는지, 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에까지 번지는지’와 같은 좀 더 근원적인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금융위기의 원인을 좀 더 시장과 인간의 본질 두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시장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이로 인해 구조적으로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주기적인 위기가 나타날 수 밖에 없고, 이 때 중앙정부와 감독제도의 효율성과 건전성에 따라 그 진폭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위기의 발생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근본적으로 현실세계에서의 시장은 완벽하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효율적인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으로, 수 많은 합리적인 공급자들이 수 많은 합리적인 수요자들의 필요에 맞춰 동일한 품질의 재화, 혹은 용역을 생산하고 수요자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한 ‘가격’, 즉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가격에 의해서 소비할 뿐이다. 하지만, 실제의 시장은 모두 ‘완전경쟁시장’이 아니다. 시장에서 공급자 구조를 살펴보면, 독점, 과점, 독점적 경쟁 등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형태의 공급 구조도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질 뿐, ‘완전경쟁시장’이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실제로는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지기보다 과점, 혹은 독점적 경쟁의 형태를 띄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형태의 공급구조는 수요의 정확한 예측을 어렵게 한다. 공급구조의 왜곡으로, 수요자가 누구인지, 얼마만큼을 원하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의 문제가 발생해서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게 된다. 너무 적게 생산한다면 특정 재화의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고, 반대로 수요보다 많이 생산된다면 시장에서 흡수되지 못한 양 만큼의 재화는 과잉생산으로, 공급자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과거, 산업혁명 이전에는 자본, 자원의 부족으로 과소생산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때문에 당시의 경제 위기는 기근이나 품귀현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잉여자본과 자원이 늘어나면서, 과잉생산의 문제로 인해 시장에 흡수되지 못한 재화/용역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 것들의 생산자들이 생산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때, 실물경기에서는 과잉 공급이 일어나고 금융시장에서는 버블이 발생한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규모가 커지고, 도산하는 공급자가 많아지고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 경기의 침체가 일어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공황’이라고 부르지만 경기 순환의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침체를 모두 ‘공황’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미국의 2001 년도 당시 IT 버블의 붕괴 상황이 바로 과잉 공급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당시 FRB 의장이던 그린스펀은 침체를 묵인할 경우에 발생하는 정치적인 압력을 피해, 공화당이 하층민 유권자의 표심을 얻어 재선에 성공할 수 있도록 과도하게 금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하층민의 주택담보대출을 조장했다. 이 역시 주택담보대출에서의 공급과잉으로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번의 문제는 지난 번의 버블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썩은 고름이 터지는 것처럼 더 많은 진통을 유발한다. 이미 IT 버블 붕괴 시에도 이전까지의 경기침체, 버블붕괴의 위험을 인위적인 통화정책과 금융혁신 등 또 다른 버블로 해결한 상태였으므로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세계적인 경제 헤게모니로 채택된 이래 누적된 침체와 버블붕괴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10번의 경기 순환을 경험하였는데, 이 중 침체기는 평균 10개월로 단기화 되어 온 반면, 확장기는 평균 57개월로 장기화되어 왔다). 약간의 조정으로 연착륙에 성공한다면, 주기적인 침체에 끝날 수도 있는 당시의 상황을 올바르지 못한 정책으로 억지로 부양시킴으로써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이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주체로서의 개인’을, 여기서 파생된 금융/재무론에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합리적 개인’을 가정한다. 일반적인 경우, 즉 본격적으로 경기 불황, 혹은 호황이 시작되기 전 변동성이 작은 시기,에는 이러한 가정에 의해 합리적으로 개별 경제주체들이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어떠한 모멘텀을 제공할만한 사건으로 인해 그 파급효과가 증폭된다는 사실을 보아왔다. 경기팽창은 항상 도를 지나친 버블을 동반하고, 침체는 불황 또는 심한 경우 공황을 동반한다. 이는 앞서 살펴 본 수급에 의한 측면도 있지만 미시적으로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본성에도 기인한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정치학자였던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을 통해 인간 본성, 즉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두 가지 요인을 공포와 탐욕이라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의 이론을 금융시장에 적용시켜보면 잘 들어맞는다. 누구나 리스크, 즉 돈을 잃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는 회피하고 싶어하고, 높은 수익, 탐욕의 달성을 얻고 싶어한다. 인간은 경기의 팽창기에는 탐욕스러운 본성의 발현으로, 비이성적일 정도로 과도한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수익률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침체기에는, 특히 리먼의 붕괴와 같은 모멘텀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투자의욕과 대출의욕을 상실해 급속한 신뢰상실로 인한 패닉을 가져온다. 이번의 금융위기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로 급격하게 악화된 측면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시장 내에서는 이성보다는 공포와 탐욕과 같은 심리적인 유인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에 따른 위기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국제적인 협약이나 감독기관, 법규제의 완성과 같은 안(案)들이 이상적인 제안이지만 너무나 감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 정부는 계속 독자적으로 달러를 발행해 구제 금융을 지원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공조보다는 자국 산업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금융기관의 경영자들도 본질적인 개선을 하려 하지 않고, 임기응변 식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로비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현황들로 미루어보아, 자크 아탈리와 같은 진보적인 미래학자들이 제시하는 이상적이고 효과적인 안들은 대부분 빛을 발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거나 아예 국제회의석상에서 언급조차 되지 못할 것이고, 침체는 장기화될 것이다.
또한, 일시적으로 케인즈 주의와 정부의 개입과 규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커지겠지만 일단 한 번 단일화된 글로벌 시장이 다시 지역별로 분화되기 힘들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때문에 자본은 당분간은 정부의 통제 하에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수익을 쫓아 이동할 것이고 시장에서는 지속적인 침체와 팽창이 계속될 것이며, 이러한 침체와 팽창을 막을 수는 없다. 특히 금융시장은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러한 순환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리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경제와 금융시스템의 위기해결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시장과 정부가 공조를 통해 경제의 구조적인 순환 사이클에 있어서 그 진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한 방법론 역시 아주 교과서적일 수 밖에 없다. 각각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순환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정부는 시장의 과도한 탐욕과 공포심을 막을 수 있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시장과 참여자들을 감시해야 하며, 시장과 참여자들은 자원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도록 하되 시장에서 비이성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시장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러한 시장이 최대한 제 기능을 제대로 해서 정보 비대칭의 폐해를 줄이고, 금융시장 내의 인간의 본성에 의해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막아서 경제가 침체기에 연착륙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jhanpark@yonsei.ac.kr
답글삭제우왕 내댓글 흑흑
답글삭제댓글 달았었나보네요 근데 남아있지 않음..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