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8일 일요일

[Finance / Economics] 새로운 환율전쟁의 서막?


20세기 초, 전세계를 강타했던 환율전쟁의 어두운 기운이 다시 세계경제를 감싸고 있다. 제외한 주요국의 중앙은행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경쟁적으로 돈을 찍어내고 있다. 아베노믹스, QE,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스왑 등등 어떤 방법으로 불리든, 이 모든 통화정책의 골자는 종이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의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현재의 경제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단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이 현재의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당과 야당 모두, 혹은 기업들이나 일반 국민들 역시도 누구 하나 희생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기에 오늘날의 경제문제 해결이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현 시점에서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는 중앙은행장의 결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돈을 찍어낼 수 있는 통화정책 뿐이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그 자체만으로 현재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지난 몇년간의 정책수행의 결과에서 잘 드러났다시피, 중앙은행 당국이 의도했던 바와는 관계없이, 돈이 실물경제 혹은 가계로 제대로 흘러 들어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다국적 기업과 금융기관의 현금 보유량이 치솟고, 원자재의 가격이 폭등하고, 실제경기지표와는 관계없이 일부 국가의 주식시장만이 과열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당장 리스크 관리를 위해 현금을 보유하고, 펀드 매니저는 원자재나 일부 주식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선택일 수 있으나, 경기를 진작시키고자 하는 중앙은행가들의 의도했던대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더 큰 문제는, 더 많은 돈을 찍어내면 찍어낼수록, 일반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은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통화주의 경제학의 아버지인 밀턴 프리드먼이 말했던 것처럼 인플레이션은 순전히 통화와 관련된 문제이다. 과도한 유동성으로 인해 물가는 상승하지만, 사람들의 명목임금은 이에 맞추어 상승하지 않는다. 반면, 실물자산이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부유층들은 자산가격 상승의 효과를 볼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지고, "경제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물론 종이화폐를 찍어내는 통화정책의 이점도 있다. 가장 많이 기대되는 효과들 중 하나는 '부의 이전'(transfer of wealth) 효과이다. 화폐의 상대적인 가치가 줄어들면, 그만큼 채무자와 채권자 간 부의 이전이 발생한다. 한 국가경제 내 개인 채무자들의 부채만이 탕감되는 것이 아니라, 환율이 절하되므로 빚에 허덕이고 있는 선진국 경제들의 채무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비를 진작시켜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

또 다른 기대효과로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 이다. 이는 통화당국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할 목적으로 금리를 인하한다면, 자산가격이 상승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소비를 진작시키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로 부동산 경기 같은 경우는 주택이 개인의 재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를 판단하고 경제정책을 수립하는데에 매우 중요한 지표임에는 틀림없다. 또, 미국 같은 경우는 주식시장은 연기금의 많은 부분이 미국 내 주식시장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주가의 변동에 따라 민간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거나, 호전될 수 있다.

세번째로, 통화공급이 증가하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해당 통화의 상대적 가치가 절하되고, 이로 인해 가치가 낮아진 자국 통화는 더욱 경쟁적이어진다. 이러한 경쟁적인 통화는, 적어도 이론 상으로는, 자국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므로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게되며, 동시에 수입품의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에 외국 기업들의 국내진입을 막는 효과를 갖는다. 경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통화를 절하시켜 순수출을 늘리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GDP는 가계소비, 기업투자, 정부지출, 그리고 순수출로 구성되는데, 가계가 소비를 하지 않고,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정부가 더 이상지출을 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순수출을 늘리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황금률과 공존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자국의 국익이 우선인 냉혹한 현실에서는,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는 군비증강과 다를 것이 없다. 타국의 통화가치가 절하되어 자국의 순수출이 줄어들게 된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를 평가절하시키려 할 것이다.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이 최대교역국인 중국을 대상으로 환율전쟁의 칼을 뽑아들었고, 하나 둘 씩 참가해 어느새 일본도 아베노믹스를 들고 환율전쟁에 참가했다. 우리나라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엔화가치 절하에 대응하여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브라질 재무장관 Guido Mantega가 말했듯이 새로운 환율전쟁의 서막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LTCM 파산 당시 주요 협상자들 중 하나였고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Currency Wars: The making of the next global crisis"의 저자인 James Rickards에 의하면 20세기 초의 환율전쟁은 1921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쟁배상금을 상환하고 자국상품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통화를 절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마르크 화 붕괴를 염두에 두고 한 행위는 아니었겠지만, 이는 결국 주변국들의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마르크화를 붕괴시키고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러한 통화가치의 폭락으로 인한 경제난이 나치의 집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다시 오늘날의 세계, 특히 우리가 위치한 동아시아로 돌아와 보자. 미국과 중국이 이미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주요 수출국인 일본이 가세했다. 엔화 가치가 낮아져 일본상품이 경쟁력이 생긴다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이 누구일까? 수출에 의존한 경제모델이면서, 그 제품에는 큰 특색이 없는 한국, 대만, 중국이 그들일 것이다. 국내 실업률이 치솟고 경기지표가 악화되는데 가만히 앉아서 손해볼 국가는 없다. 한국, 중국, 대만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가치를 절하시키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이는 다시 미국과 일본의 통화 당국자들에게 고민을 가져온다. 이러한 경쟁적 평가절하가 어느선에서 수렴될 지, 혹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튀어 20세기 초와 같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역사는 대체로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 방향이 긍정적이길 바랄 뿐이다.

2013년 4월 21일 일요일

[Finance / Economics] 불안한 중국의 그림자 금융


나는 항상 중국의 부상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 시절 중국사 시간에 중국의 정치 지배구조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공산당이 잠재적인 경제침체로 인해 중국에 대한 통제권을 잃거나 중국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결론이야 어쨌건 보고서로서는 빵점짜리 졸작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중국은 떠오르는 신흥패권국이다 -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연간 경제성장률은 8%에 육박하며, 13 6천만의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하고, 핵잠수함과 항공모함, 그리고 괄목할만한 군사력을 지닌 강국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국은 오늘날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으며, 달러화 표시자산을 3조 달러나 보유하여 패권국 미국의 최대 채권국가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이 지속될 경우에 2030년경에는 미국을 경제적으로 추월하고 이에 상응하는 군사력을 갖게 된다면 미국을 대체하는 슈퍼파워가 탄생할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중국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많은 약점들을 고려해본다면, 이러한 성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가 어려우며,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는 날은 생각보다 가깝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달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흥미로운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 동영상은 STRATFOR 라는 국제정세 분석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중국 경제의 잠재적 위협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 동영상의 주된 내용은 "그림자 금융"에 관한 것이었다. "그림자 금융" 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채권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계 자산운용사 PIMCO 에서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지 않는 부외거래를 통해 이루어지는 금융거래를 정의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은행권 자금이 이 그림자 금융 시스템을 통해서, 소규모 소비자 금융회사에 의한 대출, 중소기업 상업어음 할인, 전당포, 고리대금업 등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림자 금융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서방에서는 헤지펀드나 파생상품 거래 등에 사용되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신용망에 접근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나 소득수준이 낮은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거래를 위해 사용된 것이다.


STRATFOR는 중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를 보수적으로 책정한 경우에 12조 위안에서 많게는 30조 위안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1.9조에서 4.8조 달러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중국의 현재 인구가 13 6천 만명 정도라면, 1인당 적어도 1,400 에서 3,500 달러 정도의 그림자금융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그림자 금융 시스템에서 이루어진 대출들은 상당히 금리가 높다는 것인데, STRATFOR는 그림자 금융 대출금리를 20~3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수치조차도 상당히 과소평가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중국보다 금융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우리나라조차도 대부업법 법정 이자율은 현재 39%이지만, 연간 100% 가 넘는 이자를 받으며 폭리를 취하는 대부업체나 불법 사채업자들에 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STRATFOR의 보수적인 이자율을 바탕으로 계산을 해보더라도, 평균 중국인 1인당 연간 280 달러에서 1260달러 사이의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중국인 1인당 GDP 6000 달러가 좀 넘으니, 자신의 연간소득 중 적게는 4.6%에서 많게는 21% 정도가 그림자 금융 시스템을 통해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갚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더 최근에는, 글로벌 투자은행 UBS가 중국의 그림자 금융시스템의 규모가 GDP 40%를 넘는 3.2조 달러 정도가 될 것이라는 추산을 내놓았다. 모건 스탠리 글로벌 투자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Ruchir Sharma에 의하면, 중국인 1인당 부채비율은 연간 GDP 200% 정도이다. 이는 국가 및 지방정부 채무만을 합산한 것인데, 그림자 금융을 통해 차입한 것들을 추산한다면 추가적으로 GDP 40~50% 정도의 숨겨진 부채가 더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가 빚더미에 앉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양호해 보일 수도 있다. Ruchir Sharma는 미국의 연방 및 주정부 부채들을 합산해보면 미국인 1인당 평균적으로 연간소득의 350% 에 해당하는 부채를 지고 있다고 추산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개인의 채무는 주택, 자동차, 학자금 대출, 보험 등등 유무형의 자산들을 취득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또 연방예산의 대부분은 국방이나 사회보장기금 등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사용된다. 반면에 그림자 금융시스템에서 돈을 빌리는 중소기업이나 중국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때문에 현재의 부채수준에서 그림자 금융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은 상당하다. 중국과 미국의 또 다른 차이점은,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국가이나, 중국은 개발도상국들 중 가장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야 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1인당 GDP가 미국의 7분의 1 수준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이자비용이 개인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커진다. (일부 중국 신용평가사가 무디스나 피치 등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미국의 실제 신용도는 더 낮고 중국의 신용도는 더 높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공허하고 의미없는 것일 뿐이다. 금융시장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 누구이며,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많은 판돈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미국의 부채는 FRB의 통화정책에 의해서 언제든지 탕감될 수 있다. 중국이 3조 달러 어치의 달러표시자산을 갖고 있는데, 만약 연준에서 달러를 현재가치의 75% 수준으로 평가절하하려고 한다면, 실제로 중국의 달러표시 자산 중 25%의 가치가 증발하는 것과 동일하다. (중국은 채권과 통화를 거의 반반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미국 국채를 투매할 수 없다. 통화를 매도하든 채권을 매도하든 나머지 보유자산의 가치는 폭락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글로벌 화폐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EU 뿐만 아니라 BRIC 국가들조차도 자국통화를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절하시키고 있고, 이는 중국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기업이나 국영기업들은 견딜 수 있겠지만, 중소업체들이나 영세 개인사업자들은 이러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도산하게 될 것이고, 이는 대규모 실업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 일본 역시 환율전쟁에 가담했는데, 이는 경쟁력 없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국은 2008년 금융 위기에는, 국영 혹은 거의 국영이나 다름없는 여러 은행들을 통해 신용을 확대시키고 정부지출을 늘려서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의 팽창으로 인해서 중국 국내 통화량이 자국 GDP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까지 확대되었다. Ruchir Sharma에 따르면, 현재 중국 내 통화량은 10조 달러 정도로, 7조 달러 정도의 GDP보다도 더 큰 수치이며, 이는 심지어 미국 내 통화량(8)보다도 더 크다고 한다.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을 때 중국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13억분의 1의 확률을 뚫고 그 자리에 올라선 중국 공산당 위정자들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