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Politics / Economics] 재정절벽에 관한 짧은 생각

얼마 전 중동 출장 중, 숙소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TV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고 있었다. 아랍어 방송들 위주로 나와 화면만 3초씩 보고 지나가던 중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방송이었던 블룸버그 TV에서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블랙록의 CEO 래리핑크. 블룸버그 TV에서 재정절벽과 관련하여 핑크 CEO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던 차였다. 핑크 CEO는 공화당 및 민주당 의원들 몇몇을 만나고 왔으며, 미 의회가 경제적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일련의 딜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보다보니 문득, "재정절벽"의 위험이 미디어에서 다소 과대평가 되어 보도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연간 GDP 의 3배, 약 $3.6조를 움직이는 금융계의 거물, 래리 핑크 블랙 록 CEO)


'재정절벽'이란 수년간 지속되어 오던 세금감면혜택과 재정지출 프로그램이 동시에 만료되어 경제에 충격을 주는 것을 뜻한다. 자국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방법론에서 민주당은 정부지출 확대를, 공화당은 세금감면을 주장해왔다. 대통령과 상원 다수당은 민주당이지만, 하원 다수당은 공화당이기 때문에 이 둘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견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12년이면 만료되는 세금감면혜택의 연장과 재정지출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재정적자'의 위험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재정절벽이 현실화될 경우에는 내년 미국 경제는 0.5% 위축되며 현재 7.9% 가량인 실업률도 9%대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서로대립하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징인 코끼리와 말. 심볼이 의외로 귀엽다)


개인적으로는, 양당이 세금감면혜택이나 재정지출 둘 중 하나, 혹은 두 가지 모두를 연장하는 데에 합의할 것이지만 이러한 '빅 딜'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사되지 않다가 가장 극적인 순간에 성사되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생각한다. 연출에 능한 미국 미디어는 다음과 같은 보도를 계속해서 내보낼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극심하게 대립하고 분열되어 있어 보이지만, 우리는 이 나라가 그대로 주저앉도록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직면하게 되는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전형적인 미국의 전략들 중 하나이다. 미국은 국론을 하나로 수렴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반에는 간과하던 잠재적 위험들을 특정 단계가 지나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외부적인 요소들이 활용된다. '60 ~ 70 년대의 소비에트 연방, '80년대 일본 및 일본기업들, 2000년대 초반에는 알카에다의 아랍 내 세력권 확장, 그리고 최근 부상하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외부요소들을 국가의 '심대한 위협'으로 설정되는데 사용되었다. 때로는 그렇게 많은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내부적인 문제들이 부각되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해결된 '90년대 초의 쌍둥이 적자, 그리고 새로운 혁신의 부재 등이 좋은 예 이다. (사실은 가장 많은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최근 몇년 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중국인 또는 중국 기반의 악당들이 많이 나왔다.
영화 "다크나이트" 중)

'가상의 적'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요소들은 물론 미국의 국가안보, 경제 및 사회안전성 등에 잠재적인 위협을 끼치기는 했으나 심대한 위협을 끼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처럼 외부의 '가상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국민들을 통합하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안들을 도출해내고, 결론적으로는 새로운 발전을 위한 동력을 제공하는 모멘텀이 되어왔다. '재정절벽'에 관련한 논란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설정된 '가상의 적' 아닐까?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IR/Geoplolitics] 소국의 선택, 협력과 공존

오늘날 국제정세와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구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한 이후로 20년간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은, 2008년도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로 인해 그 위신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장기간의 경제성장과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경제 뿐만이 아니라 군사, 외교, 정치 분야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미국은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아가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국방 및 안보정책에서 "Pivot to Asia"를 외치며 동아시아 지역 내 군사 및 경제 동맹 TPP (환태평양 동반자협정)를 구축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질세라 RCEP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구축해서 역내에서 영향권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안보는 철저하게 미국에, 경제는 철저하게 중국에 의존하는 작은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은 둘 중 어느 하나에게도 소홀할 수 없는 한 편, 둘 중 어느 하나의 변심에도 국가적 위기를 맞을 수 있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발군의 외교실력을 발휘하는 것 만으로는 무리다. 미국이건 중국이건 경쟁이 심화되는 어느 시점에선가는 역내 국가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고 소국인 대한민국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두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봉착한 소국들은 항상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명-청 사이에 갈등하던 조선 외에도, 르네상스 말엽에서 대항해 시대로 넘어가는 16 세기 지중해의 베네치아가 오늘날 우리와 비슷한 경우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기독교 연합 세력은 당시 전세계 무역의 중심이던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겨루었다. 당시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었는데, 주요 교역 대상국은 오스만 투르크였다. 반면, 교황청과 같은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문화적/정서적으로는 기독교 국가였던 터라 명분 상으로는 기독교 세력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도 비슷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이 가열된다면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고, 베네치아보다 운신의 폭이 더 좁은 우리나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자주국방능력을 확보하고, 내수의 확대를 통해서 대외의존도를 감소시킨다는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난 반세기 간의 국가전략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점진적인 개정이 필요로 할 것이다. 수출중심의 경제구조가 내수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의 소득이 증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경제정책이 전면적으로 수정된 뒤로도 긴 시간이 걸린다. 동시에 인구가 증가해야 하는데,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적고 노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에서 단기간 내에 내수를 증대시키기 위해 획기적으로 인구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낙타를 바늘 구멍에 넣는 것 보다도 어려워 보인다. 국방의 경우는 더 어려워 보인다. 북한과 이미 대치해 있는 상황이고, 단순히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군비증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이들만큼 커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힘 만으로 이들 사이에서 영토주권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이상적인 이야기들은 시간적인 측면, 즉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임박했다는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아가야 할까? 자연에서 작은 고기들은 떼를 지어 큰 무리를 형성해 다니면서 상어 등의 포식자들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한다. 국제사회라는 대양에서 작은 고기와 같은 우리 대한민국도 큰 고기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러한 전략을 취할 수 있다. 국가들이 연합을 위해서 공조하는 것은 물고기들이 살기 위해서 군집해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이겠지만, 그 근본원리는 같다. 어느 한 거대한 개체에 자신을 의존하는 것보다는 작은 개체들간의 협력을 통해서 큰 개체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ASEAN, 대만과의 협력강화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ASEAN 국가들 및 대만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거나해상에서 이미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등, 중국의 세력 팽창으로 인해 잠재적으로 국가 안보 상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국가들이다. 특히 대만과 같은 경우는 직접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주권을 위협받고 있다. 이들 하나하나는 작은 국가들이기 때문에 현재는 미국과의 군사협력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지만, 이들도 언제까지나 미국의 지원만을 바라볼 수 만은 없는 입장이다. 미국 역시도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 보다는 이 지역에 연합세력을 형성한다면 중국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때문에, ASEAN 역내 뿐만 아니라 대만과 한국까지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상호신뢰를 쌓아 상호 간 유사시 군사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선 까지 발전된다면, 중국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미국 역시 완충지대(Buffer-zone)로서 ASEAN-대만-한국의 협력을 인정하려 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ASEAN 의 현재 경제규모는 2011년도 기준 2.18조 달러로, 대만과 한국을 합친다면 그 경제규모는 3.76조 달러에 이른다. 이는 2011년 3.6 조 달러의 독일에 이어 세계 5위 규모로, 2017년에는 ASEAN 및 대한민국, 대만의 경제규모의 합은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규모인 6.1조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명목 GDP 기준,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이 정도 규모의 경제권이 하나로 엮인다면, 더구나 ASEAN 인구가 6 억에 달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젊은이 층이기 때문에 경제가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 또한 ASEAN 국가들이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ASEAN 국가들과의 교류는 현재 우리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대외의존도 심화 및 역동성의 상실, 그리고 자원부족이라는 문제점들에 대한 좋은 활력소이자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SEAN 국가들은 반대로 기술력 및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의 투자 및 기술협력 등에 목말라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본다면, ASEAN 과의 경제적인 협력은 양측 모두에게 득을 주는 윈윈(Win-Win)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ASEAN 이외, 대만의 경우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IT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대만과 한국 기업들이 협력을 통해서 IT 기술 R&D에 투자한다면, 치고 올라오는 중국, 원천기술을 독점하는 일본과의 경쟁에 훌륭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군사-경제 협력이 증진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리더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ASEAN 국가들이나 대만보다 군사/경제적인 측면에서 앞서있다. ASEAN의 맹주인 인도네시아 역시 2011년도 현재 GDP는 약 8950억 달러로 1.15조 달러에 달하는 대한민국에 비해 근소하게 뒤져있다. 군사적으로도 우리 방위산업체들이 무기체계 및 장비들을 다량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한류' 및 'K-Pop'이 이들 동남아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며 'Made in Korea'에 대한 인지도가 한껏 고조되어 있다. 또, 이들 국가들이 대부분 한국의 경제개발전략들을 연구하고 벤치마크로 삼고 있다는 점들 역시 주목할만하다. 이처럼 ASEAN 국가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시아 지역 내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자주적으로 지키자"는 하나의 이니셔티브를 갖고 주도적으로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ASEAN 국가 지도자들 및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반향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 "적벽대전"에 보면 새끼줄을 꼬아 짚신을 만들던 유비가 지푸라기 몇 개를 부하들에게 건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푸라기가 하나씩 있으면 쉽게 끊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약한 지푸라기도 여럿이 모여있으면 이렇게 끊어지질 않는다." 우리의 상황도 비슷해 보인다. 국제사회는 엄연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어느 쪽에 붙을지를 고민하면서 국가의 존망을 지도자들의 외교력과 정치력으로만 해결하기 보다, 힘 없는 세력들을 규합해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한다면, 게임의 룰을 바꿀 수가 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 인종, 다른 경제상황, 상호신뢰의 부재 등 많은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 중국이나 미국, 혹은 다른 제 3 자가 이처럼 하나의 연합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강대국 사이에 홀로 고립된 국가는 항상 슬픈 운명을 맞아왔으며 군사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력 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국들 간의 공조와 협력을 통해 '강대국'은 아니더라도 '강소국 연대'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John F. Kennedy 대통령의 취임 연설 중 일부를 적어보고자 한다.
"United, there is little we cannot do in a host of cooperative ventures. Divided, there is little we can do - for we dare not meet a powerful challenge at odds and split asunder."

5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말이 더욱더 절실하게 와닿는 요즘이다.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IR / Economics] 세종대왕과 모택동이 그리는 대한민국 지도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지폐는 한국은행권 만원권일 것이다. 이 만원권의 앞면에는 우리 국민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선군, 세종대왕의 초상화가 그려져있다. 모든 화폐가 그렇듯 만원권은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의해 가치가 보증된 수표이며 이것의 가치에 대한 신뢰는 대한민국 경제력과 국력에 대한 신뢰이다.

중국의 화폐는 인민폐이다. 인민폐 1, 5, 10, 50, 100 위안권에는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서방세계의 '환율조작국' 의혹에도 불구하고 연일 그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위안화는 오랜기간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을 제치고 G2 로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경제의 위상을 잘 나타낸다. 실제로 지난 18일,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중국이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한 93년도 이래 거의 2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국정부는 위안화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에도 적극적이다. 주변 교역국들과 통화 스왑을 체결하고, 인프라가 낙후된 인접국가들에 SOC 건설에 자금을 제공하고, 무역대금 결제를 위안화로 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 등 위안화의 영향력 확장을 노리고 있다.

(모택동의 얼굴이 새겨진 위안화, 중국은 위안화의 세계화를 도모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달러와 위안화의 경쟁을 주목하고 있다. 자국의 역사적 지도자의 초상화가 새겨진 화폐를 가장 널리 유통시키기 위한 이 경쟁의 승자가 결국 21 세기 경제패권을 장악하는 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헤게모니를 어느국가가 가져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화폐전쟁에 정신이 팔린 정작 우리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중국이 야금야금 북한 북부 경제특구로 지정된 지역들로부터 시작해 모택동의 얼굴이 새겨진 위안화를 배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래 대한민국이 통일된 시점에서의 국경선을, 혹은 한중 양국의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한 실효지배지역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지난달 말,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황금평 및 나선 등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 경제특구에서 중국 위안화가 북한 화폐와 함께 공식 화폐로 통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북한이 손을 벌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중국이다. 이 틈을 타고 중국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북한 북부지역의 경제적 지배를 통해 만주로부터 한반도 북부까지의 지역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경선을 암암리 혹은 공식적으로 넘나드는 자국상인들의 일련의 상거래활동으로 시작하여, 중국은행들의 차관제공이나 기업들의 직접투자 등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인민폐가 북한지역에 통용되게 된다면, 정치적/군사적으로 국경선을 긋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명목상으로는 북한의 영토이지만, 이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중국 기업에서 일을 하고, 중국제품을 쓰며, 이 모든 경제활동의 대금결제가 중국의 돈인 인민폐로 이루어진다면, 이 지역을 북한의 영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위안화 통용이 공식화 된 북한 내 경제특구)
<북 경제특구 화금평에 중 위안화가 공식화폐>, 매일경제 9월 27일자 기사 中

어떠한 화폐가 통용된다는 것은 그 화폐가 통용되는 지역이 화폐를 발행하는 나라의 영향권, 좁게는 경제적 영향권, 더 나아가서는 정치적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기축통화를 갖는다는 것은 전세계가 해당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권 안에 있다는, 즉 패권국가임을 뜻한다. 전세계 외환결제의 약 80% 이상이 미국의 화폐인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세계 상거래의 80%가 달러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국가 간의 무역은 해상운송로를 따라 이루어지고, 화물을 실은 선박들의 해상운송로에 대한 접근 전세계에 파견되어 있는 미국 해군의 승인 하에 이루어진다. 전세계의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인 원유는 대부분이 중동지역에 매장되어 있으며, 중동지역의 정치/안보는 궁극적으로는 펜타곤에서 결정된다. 결국, 기축통화가 달러라는 사실은 전세계 정치/경제가 미국의 영향력 안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지 워싱턴호 전투항모전단. 중동의 유조선부터 일본의 참치잡이 원양어선까지 지구 상 모든 선박들은 모두 미 해군의 감시 아래에 있다.)

반면, 어떤 화폐가 발행국 정부의 영토임에도 그 안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면, 해당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없거나, 해당지역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 영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청제국 말엽 빈번한 화폐개혁의 실패로 인해 사회가 불안정해졌고, 중국을 정치나 군사적으로 공략하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잠식하고자 했던 영국은, 중국진출 교두보였던 홍콩에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영국계 은행들은 정부에 차관을 제공하고, 신용도가 높은 어음을 발행 및 유통시켜주며 결국은 발권권한마저 가져왔다. 이 후 중국대륙은 홍콩을 통해 대영제국에 의해 경제적으로 지배되었다. 중국이 홍콩에 반환된 이후에는 기존에 발권권한을 갖던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과 HSBC 은행 외에 중국계인 중국은행(Bank of China) 역시 발권권한을 갖게 되었지만, 이들은 모두 민간은행이며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People's Bank of China)과는 다르다. 홍콩은 중국령이지만 여전히 공산당이 통제하기는 어렵다. (사실 상하이를 금융허브로 육성하고자 하는 중국정부의 움직임은, 통제가 어려운 홍콩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고 금융시장을 정부통제 하에 두고자 하는 포석이 깔려있다는 의견이 있다)

(HSBC가 발행한 홍콩달러. 영국에게 경제적으로 지배받았던 중국의 뼈아픈 과거의 상징이다)

이처럼 어떤 지역에서 어떠한 화폐가 이용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중동과 같이 민족이나 문화의 이질성이 극단적으로 강하지 않은 경우, 어떤 지역이 해당국가의 정치적 영향권 안에 있기위한 선결요건은 경제적 통합이며, 경제적 통합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해당통화의 통용이다.

북한 일부지역에서 중국의 화폐가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북한은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 안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실제로 지금까지 북한에 투자한 중국기업은 100여곳에 달하고 총 투자금액이 3억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투자분야 역시 다변화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적 예속화를 위한 중국의 움직임들을 이 지역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동북공정과 맞물려 생각해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중국이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북한 북부지역에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위안화가 통용되고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된다면,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 종속시키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멀지 않은 미래에 통일이 다가온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든 이 지역은 격랑에 빠질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의 사회적 혼란 및 정치적 분열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지역을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 역시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 지역에 정치적/군사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특히 이 지역에 대한 자국 기업들의 투자가 상당부분 진행된 중국은, 자국 기업 및 자국민의 경제적 이익과 신변보호라는 좋은 명분을 얻게되고 이에 따라 이 지역의 치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북한 북부지역의 주민들 역시, 기존에 위안화를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편하고, 중국기업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여기서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다. 북한의 북부지역이 송두리째 경제적/정치적으로 중국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통일된 대한민국은 조선왕조가 지배했던 오롯한 한반도가 아니라, 고려왕조의 국경선을 갖게될지도 모른다. 고구려의 얼이 살아 숨쉬고 세종대왕이 4군 6진을 설치했던 우리 땅에서, 모택동의 얼굴이 범람하지 않도록 종합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고려의 국경선. 신의주와 나선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북부지역의 경제가 중국에 예속된다면 통일 대한민국은 한반도 전체가 아닌, 고려왕조의 국경선을 갖게 될 것이다.)
두산Encyber.com 자료
 
(세종대왕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설치한 4군 6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경선은 사실 상 세종대왕 때 설정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자료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IR/Geopolitics] 댜오위다오 or 센카쿠 열도 ?


최근 일본과 중국 간의 영토분쟁의 원인이 되는 "댜오위다오" 혹은 "센카쿠 열도"라고 불리는 곳을 구글 어스로 한 번 찾아보고 싶어졌다.

(센카쿠 or 댜오위댜오*)

(지도 상의 센카쿠 / 댜오위댜오*)

대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실로 작은 섬이다. 몇 주 전에 찾아보았을 때만 해도, 한자로 "댜오위댜오는 중국땅!" 이라고 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한 번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령 오키나와 현 센카쿠 섬 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센카쿠 / 댜오위댜오*)

어느새 댜오위댜오는 중국땅이라는 표기가 일본령 오키나와 현 센카쿠 섬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일본은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굴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일본 네티즌들이 사이버 상에서 해당 지역을 장악한 것이다.

사실 중국이나 일본 모두 자국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중국의 경우, 경제성장을 모토로 공산당의 강력한 통제 하에 국민들을 통합하고, 민족간 경제계층간 도농간의 갈등을 무마시켜왔지만, 미국 및 유럽의 경제위기로 수출에 타격을 입고 경제성장에 따라 인건비나 식품가격 등 전반적인 물가수준이 상승하면서 더 이상 이전처럼 저가제품을 박리다매하는 성장 및 사회통합 전략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는 20년 간의 장기 경제침체로 인한 고령화, 젊은세대의 의욕상실, 세대 간의 갈등 등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이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에도 일본 국민들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패권국인 미국 역시 자국 내 문제들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국가주의로 자국민들을 선동, 내부의 화를 외부로 돌리는 것은 내부가 불안정한 많은 국가들이 취해온 전략이다.

(링크 : 중국-일본 영토분쟁과 미국의 중립적인 태도**)

도광양회.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던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고, 주변국들은 중국이 과거처럼 힘에 의한 외교로 자신들을 억누를 것을 염려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일본 외에도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과 영해 및 영토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영토주권 및 경제/에너지 안보에 국가전략의 큰 방점이 있는 섬나라 일본에게 중국 해군의 증강은 섬뜩한 소식이다. 자국이 살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2차대전 전범국의 방위력 증강은, 더더군다나 오래도록 침략을 받아왔던 우리로써는 안심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은 국방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전환했다.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자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력을 억제하는 것을 제 1의 전략으로 삼는다. 떠오르는 중국을 확실하게 견제하겠다는 심산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과거 중원을 지배했던 한족 제국의 외교정책과 비슷하다. 이이제이 (以夷制夷). 오랑캐를 써서 오랑캐를 다스린다. 해당 지역의 떠오르는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강력한 우방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2차 대전 당시 아태지역에서 일본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을 지원했고, 냉전기에는 소비에트 연방을 억제하기 위해서 유럽에서는 독일,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앙 아시아에서는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다. 이번 영토분쟁 사건은 결과적으로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리 땅 독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다.


(소중한 우리의 영토, 독도*)
* Google Earth 자료
** 정보분석기관 STRATFOR 자료 (www.stratfor.com)

[Finance / Economics]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 변동



작년도 8월 말 경에 "내일의 금맥" 이라는 제목으로 미래 어떠한 자산들의 가격이 상승할 것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보는 글을 게재했었다.

당시, 각국 정부 및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완화정책으로 인해 시중에 유동성 및 통화량이 확장되어 실물자산들의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신흥국들의 경제성장에 따라, 해당 국가들의 발전형태에서 나타나는 도시화 및 산업화에 필수적인 원자재들을 중심으로 가격상승을 예측했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 1) 비철금속 (구리, 철광석), 2) 곡물, 3) 원유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에 속한 자산들의 가격이 점차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의 예측의 성적표는 어느정도 될까?


1) 비철금속

(2011년 8월 말 구리가격*)  

(2012년 10월 현재 구리가격*)


2) 곡물

(2011년 8월 말 곡물가격 - 옥수수, 대두, 소맥*)

(2012년 10월 현재 곡물가격 - 옥수수, 대두, 소맥*)
3) 원유

(2011년 8월 말 원유가격 - 텍사스유, 브렌트유, 두바이유*)



(2012년 현재 원유가격 - 텍사스유, 브렌트유, 두바이유*)


글을 썼던 8월 말과 강평을 하는 10월 중순의 가격만 놓고 비교하자면 솔직히 말해서 좋은 성적은 아니다. 미국 불경기와 유로존 국가채무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중국 필두 신흥국들의 수출부진으로 지금까지의 성적은 별로 좋지 못했던 것 같다. (심지어 동기간 1700 대 후반에서 1900대 초중반 까지 상승한 코스피 지수에 비해서도 크게 좋은 성적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장기적인 추세를 보면, 그래프가 시작하는 2009년도 말부터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상향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변동성이 매우 컸지만). 그리고 일부 관측들 -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출할 것이라는 분석과 당분간은 원유 아닌 다른 에너지원의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 - 역시 어느정도 들어맞은 측면이 있다.

"우선 화폐공급부터 살펴보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인 FRB는 금융위기 직후 TARP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을 시행해 시장에 약 7000억 달러 가량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 이후로도 QE2 (Quantitative Easing)을 통해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대량의 유동성을 공급했는데, 전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기축통화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또 하나의 영향력 있는 통화인 유로화 역시 남유럽 국가(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위기로 인한 지출로 통화공급이 증가했다. 그 밖의 주요통화인 일본의 엔화 역시 최근 도쿄 대지진으로 인해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적인 재정지출과 이로 인한 통화량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가장 보편화된 에너지원인 석유(원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IEA (International Energy Association)는 중국이 미국의 에너지 사용량을 앞질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선진국들이 점차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데 반해, 신흥국들은 그럴만한 기술적, 재정적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화력발전이나 원자력 발전을 택하게 된다. 이 중, 화력발전이 더 안전하고 적은 규모의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하므로 저개발국일수록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또한 최근에 있었던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사고는 저개발국들로 하여금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석유는 그 공급이 매우 제한적이고 불안정한데, 특히 매장지역이 특정지역군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 지역은 대체로 매우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최근 MENA (Middle East North Africa) 지역의 쟈스민 혁명이나, 끊임없는 군사분쟁과 테러,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획기적인 신재생 에너지원이 개발되지 않는 한, 석유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


물론 위의 관측들도 지금 시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반쪽자리이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반대로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관측이었을 수도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수도 없이 오류를 범하고 자신의 잘못된 분석에 대해서 시인하지 않는가? 큰 트렌드로 본다면 나는 위의 세 가지 자산들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자산의 가격들 - 특히 이러한 원자재의 가격들 - 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매수/매도 타이밍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특히 원유 트레이더가 장기 트렌드만을 생각해서 '12년도 초에 원유를 매수했었다면, 4/4분기에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이란과 전쟁을 하지 않는 이상, 눈물을 머금고 올해 보너스에 대해선 잊어버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 네이버 금융 자료참고 (www.naver.com)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Economics / Finance] 시장이 할 수 없는 것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위기 시대라고 부릅니다. 2008년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로 위기' 불은 세계화로 연결된 여러 국가들에 급격하게 번져 세계적인경제위기' 확산되었습니다. 경제위기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인 모순,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상적 기반인 경제학의 문제점에서 기인했다는 문제인식과 경제위기로 인해 불거진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은, 자본주의, 나아가서는 오늘날 경제학의 근간이 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위기의 주범으로 규탄받는신자유주의 경제학역시, 시대적 변화의 산물이므로, 막연히 이론에 대해서 비판하기 보다는 상황적인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이런 차원에서 20세기의 국제정세 정치, 경제, 사회, 기술, 학문 여러가지 요소의 변화에 따른 경제사상, 경제학의 변천사를 되짚어보고, 급변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고민들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시장주의가 만연하던 1900년대 초반의 풍요는 1929 대공황의 발생과 함께 끝을 맞았습니다. 시장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없다는 인식으로,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으며, 전쟁으로 얼룩진 30~4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이르기까지 군수물자생산, 공공사업투자, 전후 복구 등에 대한 정부지출의 확대와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로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점차 지나친 재정지출과 이를 메우기 위한 세율,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라는 덫으로 돌아왔습니다. 특히 미국은 공산권과의 냉전과 베트남전으로 인한 국방지출 증대로 재정이 크게 악화되었으며, 영국 역시영국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도한 복지지출로 인한 사회/경제 문제가 대두되면서 케인즈식 정부지출을 강조하는 당시의 경제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시카고 학파 등은 규제철폐와 시장개방, 감세 등을 모토로 하는신자유주의 경제이론' 들고나와 민간 부문의 자율성 확대를 주장했습니다.




(파업하는 영국 광부들의 모습)


현실경제의 이러한 문제들과 함께,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을 봉쇄하고자 하는 미국 서유럽 국가들은 정치/안보/경제 분야에 있어서의 교류 협력 확대를 시도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통신과 운송수단의 발전은 재화와 서비스의 이동, 무역을 촉진시켰습니다. 무역의 확대에 이어 해외 직접투자 서구권 기업들의 다양한 방식의 해외 진출은 국경을 넘는 자본의 이동을 가속화 했으며, 71년도 베트남전 등으로 인해 국방부문의 과도한 지출을 겪어오던 미국의 달러화 금태환 중지로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변화하면서, 국가 차원에서는 통화공급의 조절을 통해 경제를 컨트롤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해진 반면, 기업들은 이에 따라 새롭게 파생된 환율리스크나 이자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여러가지 금융기법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제금융/재무론 국제통화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1940년대 사뮤엘슨이 수리적 / 정량적으로 경제현상을 설명한 이후로 하나의 자연현상처럼 경제를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지속적인 움직임으로 종전에는 ‘Political Economy’라고 불리던 경제학을 ‘Economics’, 급기어는 ‘Econometrics’ 바뀌어 불리게 되었습니다. 국제관계 / 정치 / 사회 / 법률 인간사회의 여러 분야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자연과학처럼 인식하기 시작한 입니다. , 앞서 언급한 통화량이나 여러가지 금융 위험들의 해결이나 관련된 이론의 증명을 위해 많은 수식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컴퓨터의 발명은 많은 거래와 연산들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인식을 각인시키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부터 자연과학에서는 많은 변수들에 대해 고려하기 시작하고, 학문과의 상호교류를 증가시켜 왔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계량 경제학의 아버지, 사뮤엘슨)





이처럼 경제학은 사회현상이 아니라 마치 과학처럼 인지되면서, 국제정세/정치/법률/사회 등의 여러 분야들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변수들이 통제되는 하나의 독립적인 현상으로 이해되고, 영미식의신자유주의 경제학' 경제이론들은 자연과학의 법칙들과 같이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 경제학의 이론들은 수식으로 증명되기 때문에 과학처럼 느껴져, 언어로 표현되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과는 달리 가치중립적으로 느껴지며, 이론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 실제로는 중립적이지 않은 대전제와 명제들마저 보편적 진리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경제학은, 실제로는 은연 자신의 이론을 구성하는 전제들을 보편적 진리처럼 사람들에게 주입함으로써, 다분히 교조적인 색채를 띄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현상은 본질적으로 경제활동의 주체들이 속한 국가나 사회의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이루어지며, 해당 국가나 사회의 정책과 법률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특징은 구성원들의 가치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경제현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 적용은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개인주의가 일찍부터 발달한 서구사회와, 공동체주의적인 정서를 오랫동안 간직해 동양사회에는, 다른 방식의 경제학, 자본주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제학은 이러한 본질적인 특성 - 사회나 국가 안에서 구성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현상이라는 - 도외시하고,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론처럼 간주하여 다른 분야들과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경제학의 이론들을보편적 진리'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법론인 경제학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자연법칙처럼 이해되어, 오늘날의 경제위기와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 “합리적 인간의 이기심효율적 시장의 기능 상호작용은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한다는 명제는 거의 상대성 이론이나 만류인력법칙과 같은 과학이론들처럼 공리화(公理化, axiomization)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이론을 형성하기에 필요한 이러한 가정들 - 경제학의 대전제와 기본 명제들 - 과연 자연법칙과 같이 변하지 않는 진리일까요? 사람들은 각자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서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합리성을 기준으로 모든 판단을 내리지 않아야 때가 있습니다. 또한 시장의 손에만 맡겨졌을 , 자원의 배분이 항상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이 자연환경 등의 공공재를 배분하는 경우나 특정 산업들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일부 독과점 기업들이 담합을 하는 경우 , 시장에만 전적으로 자원의 배분을 맡기는 경우에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이것은 심지어 기존 경제학에서도시장실패' 라고 일컫는 개념입니다.


(“탐욕은 좋은 이라고 역설하는 고든 게코, 영화 스트리트”)

경제학은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이고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하기에, 수식의 변수들은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서 달라질 밖에 없습니다. , 자연현상을 있는 그대로 증명해내는 과학이론과는 다르게, 사회현상에 대한 학문인 경제학의 경우, 이론이 현실에 적용이 되었을 , 사회현상에 변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인간사회는 서로 다른 주체들의 수많은 교류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경제학의 이념적 근거가 되는신자유주의 경제학역시, 당시의 상황 국내 경제문제의 해결, 그리고 기술발전에 따른 무역 / 금융거래 증가 - 에서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 ‘신자유주의 경제학 저변에 깔려있는 자유주의적 전제들 역시, 공산권의 사회주의적 /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의 이념적 대립각을 세우고, 자유진영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이념적 무기로 사용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처럼 목적성을 띄는 전제들과,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가변적 변수들을 고정시켜놓고 수립한 이론들을보편적 진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악수하는 밀턴 프리드먼, 경제와 정치를 떼어놓고 생각할 있을까요?)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에서 불변의 보편적 진리란 존재할 없습니다. 경제학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70년대 전까지의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항상 반비례 한다고 믿었고, 정치인과 관료들은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기존 경제학의 가르침과는 달리 물가와 실업률이 동반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게 커지기 때문에 사회전체의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분배되었으며, 비용상승은 물가와 일자리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에 따른 경제위기와 여기에서 파생된 갖가지 사회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서 여러가지 정책들을 통해 경제를 부양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해온 당시의 처방과는 전혀 다른, “시장논리의 도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궁극적으로는자유시장경제 체제라는 자원배분 시스템의 근간이 되었고, 지난 40년간 유한한 자원을 배분함에 있어서, ‘시장이라는 판단의 척도를 제공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있다고 믿는 현대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은 정부에 계속해서 자신들의 자율성을 요구해왔지만, 2008년도 금융위기 이후로 지속되는 금융불안과 위기감의 확산은 시장이 이미 자정능력을 잃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는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추구와 시장 효율성 사이의 함수 대한 맹신이 한계점에 다다랐으며, 자유시장경제라는 자원배분 시스템에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처럼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논의들은, 단기적으로는 위기와 여러가지 사회문제의 해결에 목적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유한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옳은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후발산업국으로서 자본주의의 역사가 일천한데에 반해, 고도로 집약된 성장을 거치면서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경제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이 발생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들이 특히 중요합니다. 때문에, 일방적으로 기존의자유시장경제체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의 여러가지 요소들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인 측면들 고려하여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경제 시스템을 고안해내어야 합니다. 사회에서 시장은 어떠한 역할을 것인지, 정부는 어느정도 개입을 것인지, 분야의 문제들에 있어서 어떠한 가치들을 우선에 놓고 판단을 것인지 그래야만 사회가 건전한 성장을 하고, 구성원 간의 통합을 유지하며, 나아가서는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찾아낼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많은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는 미래 분야를 짊어지고 우리 젊은이들의 몫일 것입니다.



위 글은 '이들' 포럼 발제 및 토의 내용을 필자가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www.theviews.com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